농부

충청로 2008. 11. 13. 10:18
                                                                                     사진=연합뉴스

 ▶벼를 추수할 때까지 농사꾼의 발소리를 천 번은 들어야 쌀이 된다 했다.
신토불이 농산물을 먹는 것은 농군의 땀을 먹는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과수원 농사를 지었다. 시인의 오감(五感)을 부여잡는 목가적인 곳이었지만 어린 마음엔 노곤함이 가득한 촌야(村野)였다. 간간히 돕는 노동은 고됐고 땀구멍 사이로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나는 것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거였다. 집에서 나간 50원짜리 호박은 시중에서 700원에 팔렸고, 사과 한 개는 100원에 '매춘'처럼 팔려나갔다. 오이 한 개는 30원에 팔려나가고 감자는 50원 밖에 안됐다. 그야말로 헐값이었다. 이는 유통단계를 여러 번 거치면서 천정부지로 달라붙는 마진 거품 때문이었다. 농군의 땀은 흙에서 한 줌의 한숨으로 사라져갔다. 매년 밭을 갈아엎고 쌀을 태우고 수박을 뭉개는 일이 반복됨은 당연했다. 약값 빼고 품삯 빼고, 농약 값 빼고, 농군에게 남는 것은 지난 봄 농협에서 빌린 융자금과 구들장 밑에 깔린 빚뿐이었다. 장삼이사여, 농민을 울리지 말라. 농군의 근육도 사용기한이 있고 유통기한이 있다. 뼈 빠지게 일해도 파스 한 장 못 붙이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삶이 우리네 농부다.

 ▶항간에 '노방궁'이 회자됐다. 야당이 '이봉화 차관 직불금' 파문을 확산시키자 여당이 '노방궁'(노무현+아방궁)을 들고 나온 것이다. 봉하마을 '노방궁' 조성에 혈세 500억 원이 쓰였다는 것. 한마디로 봉화 대 봉하 싸움이었다. 쌀 직불금에 분노하고 있던 농심(農心)을 곁눈질도 않고 벌이는 ‘밥그릇 타령’이었다. 농민들은 부당수령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벼 야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0일에만 전국 80여 곳에서 5만 가마의 '가마산성'이 쌓였다. 농심의 분노가 산처럼 쌓이자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원죄론을, 민주당은 현 정부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국정조사에 착수했다. 200여 년 전 조선도 농업과 농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쇠락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내걸고도 녹봉(祿俸) 먹는 사람들이 농민수탈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도둑농사에, 도둑심보 같이 제 배만 불리면 결국 식탁주권은 무너진다. 식량주권도 주권이다. 지난해 한국은 국제곡물 값 급등으로 농산품 가격이 하늘로 뛰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겪었다. 식량자급률이 고작 27%에 불과한데도 천하태평으로 농민을 업신여긴다면 가까운 시일 내 남의 나라 '밥'만 먹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지난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었다. 정부가 96년에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인식시키고, 농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1일인 이유는 한자 '십일(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 그러나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잔치판을 벌이고 위로받아야 할 농민들이 한해 농사를 뒤엎는 게 현실이다. 1980년 1080만 명이던 농민 수가 올해 320만 명으로 준 것은 그들을 방기하고 있다는 증거다. 농가당 부채 2994만 6000원은 농민들 혼자 짊어져야 노동의 빚이 아니라 함께 짊어져야 할 모두의 빚이다. 도회지 생활을 떠나 괴나리봇짐을 싸서 귀거래(歸去來)한 많은 이들이 다시 도회지로 회귀하는 것은 농민들의 삶이 피폐하기 때문이다.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는 귀거래사(歸去來辭)가 하나의 희망이 되고 꿈이 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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