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충청로 2008. 11. 6. 10:40
                                                                             사진=연합뉴스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2번의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힐러리를 '들러리'로 내보내고, 전쟁 영웅 매케인마저 ‘퇴역’시킨 그는 47세의 나이에 초강대국의 리더가 됐다. 그는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양보하지 않은 흑백대결에서도 이겼다. 그는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불우한 청년기를 거치며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91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면서 인권변호사가 됐고 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 짬밥 10년. 4년 전까지 거의 무명이던 그였지만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가 됐고 3억 명을 이끄는 유명인이 됐다. 미국 역사상 흑인이 대선후보가 된 것은 232년 만이고, 노예해방 후 145년 만의 일이다. 또한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부여받은 지 139년만의 일이기도 하다.

▶1619년 8월 하순. 한 척의 네덜란드 범선이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을 향하고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쳐 배는 난파 직전이었다. ‘검은 비’였다. 제임스타운은 영국인들이 만든 북아메리카 식민지였다. 범선에는 20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타고 있었다. 대륙에 상륙한 흑인들은 토착 백인들에게 짐짝처럼 분배됐다. 이들은 1662년 버지니아 법이 '노예'라는 말을 공식 사용함에 따라 1세기 반 동안 족쇄에 묶여 살았다. 그 뒤로도 흑인 1500만 명이 수채통 같은 배 밑창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들은 80여년 동안 군중(群衆) 교수형으로 3446명이나 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백인여자를 쳐다보거나 백인남자에게 말대꾸 했다거나 흑인인 주제에 왜 부자냐는 거였다. 서부영화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부리며 모래바람 사이로 휘파람 불며 나타나던 악한들이 그들에겐 저승사자였던 것이다. 그게 미국 흑인의 역사고, 그 피의 역사를 깨치고 나온 이가 오바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중심가에 위치한 로레인 모텔 306호실. 1968년 4월 4일 오후 6시 1분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흑인이었고 ‘총’은 백인이었다. 킹 목사 사망 직후 인종폭동이 일어났고 영가(靈歌)에 젖은 흑인구역은 범죄와 마약, 빈곤의 게토가 됐다. 오바마의 등극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날이 오리라"고 말한 킹 목사의 꿈을 45년 만에 실현시킨 것이다. 1965년 300여 명에 불과하던 흑인 선출직은 현재 1만여 명에 이른다.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흑인은 오바마 혼자다. 그러나 노예해방 145년이 지났어도 인종차별의 아픔은 현재까지도 진행형 'ing' 상태다.

▶오바마는 평범한 미국인이다. 맞벌이 부부로 보육 때문에 부인과 신경전을 벌이고, 집안의 개미를 박멸하기 위해 개미약을 사들고 귀가한다. 학자금 융자는 최근에야 다 갚았다. 그는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가 하루 정도 휴가를 내 아픈 아이를 돌보더라도 일자리를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세금을 로비스트가 아닌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신하던 MB의 캐치프레이즈와 닮아있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을 염원하던 우리는 크게 상처받았다. 경제가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미더운 말이 부럽고 미국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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