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정규직

충청로 2008. 10. 29. 21:40
사진=연합뉴스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다. 정부는 2012년까지 20만 명을 취업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103만 9000명에 이른 청년백수가 2012년엔 81만 5000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청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신불자(信不者)' 상태다. 학자금 대출으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 이구백(20대의 90%가 백수)·십장생(10대들도 장차 백수)으로 진화한 것도 옛날 얘기다. 그런가하면 실업보다 무서운 무업(無業) 청년도 95만 명이다. '백수물가'도 상한가를 치고 있다. '백수들의 외식1호' 자장면이 전년 대비 13.7%가 올랐고 백수들의 춘하추동 의상인 추리닝 수입가격도 1년 전보다 43.6%가 올랐다. 먹고 살기 힘든데, 먹고 입는 게 다 올랐다. '사회의 기둥' 청년이 우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이번 강남 고시원 살인·방화사건 용의자도 비정규직을 전전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판명 났다. 청년이 무서워지면 세상이 무서워진다.

▶백수남편도 200만 명 시대다. 기혼 남성 10명 중 1.6명이 빈둥빈둥 놀고 먹는다. 구직을 포기하거나 일할 능력이 없는 남편들이 177만 3000명, 아내 대신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6만 4000명, 직장 잃은 실업자 21만 명, 취업준비생 남편 1만 7000명, 나이가 많아 일할 능력이 없는 남편이 66만 7000명이다. '백수건달' 남편이 느는 것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50대에 조기 은퇴가 늘기 때문이다. 남자는 힘들 때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는 광장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남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모든 문제를 혼자서 떠안고 소리 없이 '동굴' 안에 갇혀 운다고 한다. 그 눈물을 아내는 이해하고, 국가는 감싸 안아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을 고생하고 취업을 위해 몇 년을 더 고생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초라한 '앞치마'를 안겼다. 희망의 새아침을 위해 새벽이슬 맞으며 고생을 참는 대나무를 보라. 4년 동안 땅에 잠들어 있다가 90일 만에 기적같이 30m가 크는 대나무. 대나무는 인내하면 희망이 있거늘 우리네 삶은 통나무처럼 나이테만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언제쯤 쨍하고 해뜰 날이 올까.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다. 지난해 평균 가구원수(2.87명)를 대입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 생활권'에 있다. 최저임금(시급 3480원)도 받지 못한 노동자의 94.4%는 非(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저임금에 고용 불안, 사회적 차별에 신음하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의 시위는 1000일을 훌쩍 넘었다. 죽음의 벼랑 끝에서 비명을 지르는데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고공농성에 단식을 감행해도 세상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내도 비정규직이다. 커다란 '보따리' 2개를 들고 축 늘어진 버드나무처럼 출근한다. '특수고용직'인 그녀는 사용자 측에 고용돼 건당 보수를 받는다. 기업은 아내가 쌓은 실적의 30~50%를 앉아서 챙긴다. 그래도 할말은 없다. 그들은 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방귀깨나 뀌며 큰소리치는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1%의 부자가 더 이쁠 것이고 민생경제보다 '삽질경제'가 더 좋을 것이다. 주가며 살림살이며 맨땅을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 빗물에 눈물을 숨기며 뛰어가는 사람도 국민이다. 언제쯤 우리도 궁벽을 털어내고 니나노하며 살 수 있을까.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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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남주 2008.10.30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행복이란 물질이 아닌 마음에 있다지만
    물질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