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4.15 꺼억~막걸리의 계절, 봄이 왔네 (3)
  2. 2009.11.25 개 사료 값만도 못한 쌀값
  3. 2009.03.12 봄바람, 당신에게도 부나요? (2)
  4. 2008.10.10 悲수도권
▶아버지 주름 틈에서 막걸리가 뽕짝이 되어 흐른다. 어머니 작은 손에 박힌 옹이에선 구수한 신파명조의 술이 발효된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인생의 삼합(三合)’은 가난과 노동과 눈물이었다. 이 때 슬픈 넋두리를 위로하는 시(詩)가 막걸리였고, 젓가락 두드리며 희망을 노래하던 흥타령이 막걸리였다. 코흘리개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한 모금 한 모금 도둑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여린 취기(醉氣)다. 시치미 뚝 떼고 술 주전자를 내밀면 아버지는 벌건 볼과 풀린 눈을 모른 체 하며 가벼워진 주전자를 기꺼이 받았다. 술의 양은 줄었지만, 아이가 술의 발효만큼 쑥쑥 자라고 있다는 ‘귀여운 일탈’로 본 것이다. 질긴 풀과 억센 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에서 향긋한 이야기로 익어가던 우리네 술 ‘막걸리’가 요즘 뜨고 있다.


▶1970년대 대물림된 궁핍과 빈곤에 익숙해진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동네에 초록색 새마을운동 깃발이 내걸렸다. 진입로를 새로 닦고, 초가집을 헐고 우물을 새로 팠다. 집집마다 형광등이 들어와 광명이 비췄다. 불 때던 아궁이는 전기밥솥으로 바뀌고, 부채 대신 선풍기가 여름햇살을 막았다. 바보상자 TV도 노동의 피로를 달래주는 ‘신기한 광대’였다. 이런 새마을운동의 중심에는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통일벼’가 있었다. 소출(所出)이 늘어 곳간이 넘쳤고 쌀 막걸리가 등장했다. 1977년 12월 8일 ‘1호 쌀 막걸리’가 세상에 나오자 대폿집에 술꾼들이 몰려 단시간에 술독이 동났다. 당시 쌀 막걸리의 등장은 의료보험 실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함께 10대뉴스에 포함될 만큼 화제였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옥수수나 밀가루로만 만들었다. 정부는 1년 묵은 고미(古米)로는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하고, 2년 묵은 고고미(古古米)나 3년 묵은 고고고미로만 술을 빚게 했다. 그러나 요즘 막걸리의 90% 이상은 국산 쌀이 아닌 수입쌀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덕지덕지 붙는 세금은 ‘막걸리’에게 더욱 야박하다. 맥주 500㎖ 1병의 세금을 뺀 매출 단가는 478원, 소주 360㎖ 1병은 394원인데 막걸리 750㎖ 1병은 693원이다. 오히려 막걸리가 더 비싸다. 전국 750곳의 양조장에서 빚는 2000종의 막걸리는 숱한 규제와 ‘싸구려 농탁(農濁)’이라는 설움 속에서 오늘도 술등을 적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오곡막걸리(충북 단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배다리 쌀막걸리(경기 고양), 76년 전통의 연꽃 생막걸리(충남 당진), 등록문화재인 덕산 막걸리(충북 진천)…. 세월이 빚은 명주(銘酒)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꽃 피는 계절이면 술도 익는다. 대청마루서 햇살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이는 것도,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짠지 하나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는 것도, 앞마당 무화과나무 앞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도 모두가 막걸리가 있어 가능하다. 이런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로 마셔야 제 맛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 편한 것도 없다. 사람도 막걸리처럼 조금은 찌그러지고 빈구석이 있어야 그윽하다. 사람이 막걸리처럼 익는다. 봄처럼 익는다. ‘골 때리는’ 술이라며 천대받던 막걸리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좋아진 제조법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냄새 나고, 사는 맛 나는 세상을 갈구하는 모두의 갈증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비 오는 처마 밑에서 술마당을 열고, 젓가락 두드리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봄이라서 가능하다. 꺼억~.

Posted by 나재필
쌀값하락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쌀값보장 대책마련 기자회견이 3일 충남도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이 쌀값하락에 따라 개 사료값에 비교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됐다. 이 볍씨는 1만 5000년 전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로 공인받았다. 때문에 기원전 2000년께 중국에서 벼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도 바뀌었다. 한민족이 벼농사를 지은 지 3000년은 너끈히 된다는 얘기다. 1975년 이전까진 쌀이 귀해 죽을 쑤어 먹거나 고구마·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일본·대만 벼를 교배해 만든 통일벼는 그야말로 ‘기적의 볍씨’였다. 보통 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였지만 통일벼는 120~130개나 됐다. 석 섬 나던 논에서 닷 섬이 났다. 생산량이 40%나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쌀 자급 달성(76년), 쌀 막걸리 탄생(77년), 대북 쌀 지원(77년)이 가능했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너로 인해 천 가지 근심을 잊는다.”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한을 풀어주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막걸리로 시름을 달랬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 임금이 된 철종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요즘엔 ‘대통령의 술’이 됐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고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 막걸리를 기울이며 '농주(農酒) 외교'를 했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요, 친구를 만드는 화합주다.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빚지 못했다. 때문에 세무서의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는 일이 잦았다. ‘술조사 떴다’는 소문이 돌면 술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줄행랑 치거나, 독을 깨서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용케도 고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그윽했고, 누룩의 ‘발정’이 끊이질 않았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름이 녹았다. 단내 나는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주막에 앉아 다들 거나하게 몇 순배씩 하다보면 노을도 익고 사람도 익었다. 배고픈 이는 술 찌게미를 먹어 몸도 취하고 맘도 취하게 했다. 논두렁 새참 때는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맛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된 쌀의 취선(醉仙)이다.


 ▶가뭄도 없었고 태풍도 없었다. 들녘은 풍년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추수의 기쁨을 누릴 농부들의 가슴엔 서리가 내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년이 든 것이다. 없어서 못 먹던 귀하신 ‘쌀밥’이 불과 20여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쌀 풍년은 역설적으로 쌀값 폭락을 의미한다. 쌀값은 10년 전 14만 원 선(80㎏ 기준)에서 지금은 12만~13만 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농약값,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농협 빚만 남는다. 하지만 ‘자식농사’ 때문에 농사를 접을 수도 없다. 농부의 발소리를 천 번을 들어야 쌀이 된다고 했다. 농부들이 야적시위를 벌이며 힘겨운 삶에 몸부림칠 때, 정치인들은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막걸리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3000세(歲)가 넘는 농부의 굳은살에 피눈물이 맺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농부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가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는가.
Posted by 나재필
2일 대전시 동구청 앞 화단에서 관계자들이 봄단장을 위해 만개한 형형색색의 팬지꽃을 옮겨 심고 있다. 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동영상 cctoday.co.kr 허만진 영상기자


 ▶경상도 산골소년 박정희는 여섯 살 때부터 황소를 끌고 다녔다. 뒷산에서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며 가난을 곱씹었다. 농투성이의 아들이었던 그는 40년 후 대통령이 됐고, 자신이 사랑했던 황소만큼이나 ‘황소고집’으로 유명했다. 그는 봄이면 농촌에 가서 모내기를 하고 가을엔 벼베기를 했다. ‘쇼’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농촌을 사랑했고 농민을 사랑했으며 막걸리를 사랑했다. 그의 황소고집은 오로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한 독단이었고 천착이었다. 국민들을 절대빈곤에서 탈출시켜 제대로 먹고 입게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집념이었고, 그래서 새벽종은 울렸다. 2600만의 배고픈 국민은 풀떼기를 벗어나 통일벼로 양껏 배를 채웠다. 논두렁에 앉아 총각무를 안주삼고, 봄볕을 친구삼아 막걸리 한 잔을 하게 만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저렴한 위무였다. 그 노동요에 우리보다 잘살던 북한도, 미국도 꼼짝 못했다. 부국강병, 잘 먹고 잘 살자던 그의 외침은 ‘독재자 박정희’가 아니라 ‘인간 박정희’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봄바람’이었다.

 ▶개나리, 진달래가 봄바람을 타고 북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봄기운을 느껴야 할 한반도는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어 냉전의 한풍이 불고 있다. 최근 북한은 미사일 간접위협을 가하며 남북간 군(軍) 통신선을 차단하는가하면 북한에 체류하고 있던 남쪽사람을 억류하기도 했다. 이는 민간인을 볼모삼아 남북 긴장과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겠다는 속셈이다. 더더구나 큰 문제는 햇볕정책을 탓하며 강경노선을 걷던 현 정부가 뾰족한 대응묘수 없이 국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설레발만 요란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황색바람’(남한의 자본주의 풍조)을 차단하기 위해 개성공단 중단을 검토했었던 김정일 위원장의 ‘마수’에 걸린 탓도 있다.


 ▶따뜻한 햇볕은 찬바람을 몰아낸다. 겨우내 침잠했던 한풍도 햇볕에는 오그라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북풍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퍼주기만 한’ 햇볕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신나게 햇볕을 쪼여놨더니 현 정권이 햇볕을 거둬내고 음지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강경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유화정책)이라는 논리로 시작됐던 DJ의 햇볕정책. 98년부터 무려 10년  간이나 햇볕정책을 고수하며 알랑방귀를 뀐 것도 잘못이지만, 아무런 소통 없이 ‘햇볕’만 탓한 보수정권도 문제다. MB정부 출범 이후 북한 언론은 대남 비방보도를 243회 내보냈다. 대통령을 거명한 횟수만 2390회에 이른다. YS시절 대통령을 천치, 바보, 멍텅구리라 부르고 ‘국방부’를 남조선 괴뢰 국방부로 불렀던 그들이다. 언제까지 북한의 깡패외교(brinkmanship)에 놀아날 것인가. 미국에 기대고 햇볕에 기대고 이제는 기댈 곳도 없이 방관만 할 것인가.


 ▶지금 한반도엔 겨울을 이기고 파릇하게 ‘봄’이 돋아났다. 추웠던 겨울을 겪지 않은 나무가 봄볕의 고마움을 알 리 없다. 봄은, 앓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온다고 했다. ‘고뿔 같은 불황’을 잘도 견디며 사는 대한민국이지만, 턱밑까지 차오른 봄기운을 느끼기엔 아직도 한반도는 ‘저기압’이다. 경찰이 두들겨 맞는 것도, 북한이 깡패처럼 구는 것도, 이것들에 속수무책인 정부도 우리들의 봄을 빼앗아가고 있다.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Posted by 나재필

悲수도권

충청로 2008.10.10 21:06
▶지금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있다. 그것은 38선 이념분단이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분열 짓는 남북의 분단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대략 4900만 명 정도. 이중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인구는 2400만 명으로 48.6%를 차지하고 면적은 전 국토의 11.8%를 차지한다. 충청권 인구를 다 합쳐도 수도권 대도시 몇 개 정도 밖에 안 된다. 4년 후엔 2명 중 1명이 수도권에 살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16개 시·도의 고령인구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기업체수도 서울이 4만 3988개, 인천이 2598개, 경기도가 1만 2470개로 내로라하는 중견기업은 다 몰려있다. 2006년도 16개 시·도의 지역내총생산 합계는 856조 원. 이중 수도권이 368조 원이다. 거대한 '공화국' 수도권은 점점 몸집을 키워가며 '청춘가'를 부르고 있고 지방은 늙어가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권력과 부(富)와 문화·복지 인프라를 누리며 포만감을 느끼는 그들이 '밥'을 더 달라고 한다. 변방에서 아웃사이더로 사는 지방은 그 '끼니'조차도 없는데 말이다.

▶대선에서 경제문제가 처음으로 이슈화된 건 1956년 3대 대선 때였다. 신익희 씨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구호로 걸고 나온 것이다. PP(박정희 대통령:프레지던트 박)는 63년 윤보선과의 대결에서 13만 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그러나 67년에는 100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국민이 진짜로 잘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71년 DJ와 맞붙었을 때도 90만 표 차로 이겼다. 그 때도 팔도 국민들은 초가삼간 집을 고치고 도로를 닦고 통일벼를 심은 '경제대통령 PP'를 밀었다. 그런가하면 별 볼일 없던 몽고족 200만 명을 이끌고 2억 명의 세계인을 지배한 칭기즈칸도 '경제대통령'이었다. 무소유(無所有)의 철학을 지닌 그는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나폴레옹, 히틀러, 알렉산더가 정복한 것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했다. 그는 족벌이나 혈연 등을 금지하고 철저한 능력 위주로 국가를 꾸렸으며 상업과 정보의 중요성을 꿰뚫고 단일 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입에 달콤한 설탕과 맛있는 음식을 공평하게 먹게 하고, 가슴과 어깨에 비단옷을 늘어뜨리며 좋은 말을 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00여 년 전, 탕탕평평하게 민심을 챙긴 리더십에 감동하는 이유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웠다. 일부가 먼저 부유해진 뒤 이를 확산한다는 이론으로 불균형발전정책이다. 그러나 중국은 2006년 이후부터 선부론을 폐지하고 지역균형발전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공장입지에 대한 토지사용금지와 제한업종 확대, 엄격한 농지전용 금지, 토지 사용비 상승, 환경오염기업 퇴출 등 더욱 강력한 규제책을 썼다. 중국과 비교하며 수도권 규제완화를 외치는 논리와 크게 상반된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무수한 정책들을 발표만 해놓고 시시때때로 브리핑만 하고 있다. 지자체는 그런 정부의 입만 쳐다보며 하명(下命)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뜨뜻미지근한 사이, 지자체는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생존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삐딱한 우산이 아름답다고 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젖을까봐 우산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이여, 조금은 비에 젖더라도 '양보의 우산'을 쓰길 바란다. 어차피 모두 다 잘살자는 거 아닌가.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