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이완구 충남지사가 금주 중 ‘지사직’을 사퇴하는 초강수를 둘 전망입니다. 세종시 원안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청여론의 심각성을 전달하기 위한 암묵적인 행보입니다.
한 도의 행정을 맡은 최고 책임자인 지사(知事)가 국가·사회를 위해 몸을 바치려는 지사(志士)가 되기로 결의한 겁니다. 어찌됐든 이완구 지사의 그 고매한 뜻을 지지합니다.
 이 지사는 "국가경영에 있어 철학과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국가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관계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유민주국가에서 이 것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법’과 사회적 자본인 ‘신뢰’라는 두 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지사는 ‘그래도 지사직을 갖고 투쟁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만 도민을 받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좌고우면해선 안되고, 충청민의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충청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충청투데이 11월 30일자 1면 기사 발췌>
 
이완구 지사는 충남 홍성 사람으로 제15회 행시에 합격해 국회의원, 충남북경찰청장을 역임했습니다. 국제최고경영자상,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 한국언론인연합회 '올해의 정치인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도의 행정을 책임지는 도백(道伯)이 자신의 명예로운 직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손해볼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가 도지사직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처럼' 자리에 연연해 아부와 아첨, 시류에 편승하는 그런 '정치'보다 수백번 낫습니다. 그의 결단이 충청인의 멍울 진 아픔을 대변하고, 충청인이 대동단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속보>이완구지사 12월 3일 전격 사퇴

이완구 충남지사가 3일 정부의 세종시수정 방침에 반발,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 원안추진에 도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해 왔다"며 지사직 사퇴를 선언했다.
 지난 95년 민선자치제도 시행 이후 현직 지사가 중도에 사퇴한 것은 2003년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사직한 이후 사상 두번째다.
 이 지사의 사퇴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의 세종시 갈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또 여권의 정국운영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방침에 반발해 3일 이완구 충남지사가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도청으로 들어서다 도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애절한 사퇴철회 권유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Posted by 나재필

 

                                                                                  <충청투데이 6월11일 1면>


아래 글은 한국편집기자협회보에 게재했던 칼럼이다. 언제 썼는지 까마득하게 잊었는데 우연하게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찾았다. 단순한 따옴표(돼지발톱) 하나에도 진정한 가치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느낌표'처럼 사는 인생사에서 '따옴표'는 하나의 진실찾기다.


신문은 느낌표여야 한다.
독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보고 읽으면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데 느낌(feel)을 주어야 할 신문들이 따옴표로 물들고 있다. 따옴말이나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는 큰따옴표 (“ ”)·작은따옴표(‘ ’)가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큰따옴표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거나 문장에서 따올 때 쓰이고 작은 따옴표는 따옴표 안에 다시 따온 말을 나타낼 때나 마음속으로 한 말의 내용을 나타낼 때, 또는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인다. 일명 돼지발톱, 69(육구)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마땅히 쓰여야 할 용도 외에 편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편리한 자기방어다. "밤새 안녕"을 위한 자구책이다. 신상의 발병이 두려워 작은따옴표로 단단히 묶은 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작은따옴표에 묶인 상대편에서 뭐라고 항의하면 돼지발톱을 사용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되레 항변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웬만하면 (‘ ’)고 모호하면 (‘ ’)다. 지면들은 서너 개의 (‘ ’)돼지발톱들이 산만하게 찍혀있다. 그 것들은 책임회피의 슬픈 흔적이고 면피용 자국이다. 작은따옴표는 큰 상처다.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폭로 저널리즘, 확인 없이 그대로 베끼는 저널리즘의 폐해다. 때문에 이런 저간의 상황들을 아는 사람들은 따옴표 신문, 따옴표 편집을 질타한다.


 어느 老선배는 이랬다. "편집은 연날리기와 같다. 팩트(fact)에 줄을 매고 가장 높이 날리는 것이다. 단, 줄이 끊어져 연이 날아가 버리면 그건 제목이 아니라고."

 다른 怒선배는 이랬다. "자고로 편집은 병 속의 새를 꺼내는 것이고 지면 속에는 자신의 몸뚱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팩트를 강조하고 책임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사실을 곡해하는 기사와 편집은 종이매체의 위상을 뒤흔드는 작은 요소다. NO를 NO라고 하는 것은 편집자의 자존이다. 책임에 대해서 NO하는 것은 ON을 끄는 것이다. 깨어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작은따옴표(‘ ’)로 묶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포박하는 것과 같다. 편집은 뉴스 핵심의 포착-압축, 그것의 표현-전개라고 한다. 편집 사활의 관건은 환경보다 내부에 있다. 한 줄의 제목일지라도 쉽사리 생각하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지면은 빛난다. 돼지발톱(‘ ’)이 없는 지면이 깨끗하고 곧아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확하게 쓰고 남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나재필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6월, 6월은 질풍노도의 시기다. 청초해진 생명의 꽃들이 저마다 만개하고, 나무마다 푸른 엽록소를 내뿜으며 기지개를 펴는 시기다.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6월은 새 역사의 태동을 알리는 시기였고 부침(浮沈)과 갈등, 반목 속에서도 의연하게 정의의 불꽃을 밝힌 시기였다. 민주화의 불씨를 당긴 1987년 6월 항쟁이 그랬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대행진이 그랬다. 지금 대한민국의 6월도 ‘광야’처럼 뜨겁다. 한국과 미국을 겨냥해 ‘미사일게임’을 하는 북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고 ‘조문정국’을 둘러싼 반정부투쟁이 광장을 달구고 있다. 여당은 거리를 예의주시하며 눈치를 보고, 야당은 ‘거리’에 편승하며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이처럼 6월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아팠고, 슬펐고, 부대꼈다. 마치 사춘기처럼.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 1년 예산이 284조 원인 나라가 국가 빚은 300조 원이다. 이는 1인당 634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암울한 시대에 대한민국은 정쟁과 전쟁(北風)과 투쟁으로 날을 새고 있다. 그 정쟁으로 국력이 소모되고, 그 전쟁으로 국가가 피폐해지고 있으며, 그 투쟁으로 사회는 양극화로 분열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을 ‘소신’으로 착각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기에 답답한 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조문정국’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야당,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쇄신하지 않는 여당. 그야말로 ‘바보들의 행진’ 같다.


 ▶꽃피는 이팔청춘을 넘어,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오면 저마다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산다. 그 상처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온몸을 휘몰아치며, 가슴앓이로 웃자란다. 소년과 청년, 소녀와 여자 사이에서 열아홉의 나이는 방황과 반항으로 얼룩진다. 자신을 표현하고, 외치고 싶은 몸부림이 거웃처럼 몸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뒷골목서 쓰디쓴 담배를 빨아보고, 아버지의 막걸리를 숨죽여 찍어먹는 호기심은 '어른'이 되기 위한 나이테의 아픔이다. 그 부침(浮沈)의 높낮이만큼이나 사춘기는 외롭고 괴롭다. 사랑과 저항, 예민한 칼날이 스스로의 속살을 다치게 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열아홉은 무서울 것 없는 십 대에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스물의 경계이기도 하다. 치열한 성장기이지만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있어 아름답다. 꿈을 담금질하는 시기.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면 지나간 길을 거울삼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반추하며 제대로 된 길을 가게 된다.


 ▶세계 최대 갑부인 워런 버핏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구태를 박차고 세상을 깨웠다. 피겨요정 김연아, 마린보이 박태환이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떨친 것도 19세 때의 일이다. ‘괴물’ 열풍을 일으키며 데뷔 첫해 신인왕과 MVP를 석권한 류현진. 충청의 박세리와 박찬호도 그 열혈의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다. ‘18금(禁)’을 지나 성년이 되는 나이 19세는 편한 길로 가는 나이가 아닌 스스로를 책임지고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나이다. 충청투데이가 오늘로 창간 19주년을 맞는다. 19세는 비굴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나이다. 더불어 타성과 구태에 의존하지 않는 나이이기도 하다. 충청투데이는 암울한 이 시대에 작은 펜대로 큰 울림을 이끌어가고 있다. 독자가 주인이요, 펜이 소통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꾼 6월, 세상을 변화시킨 19세에 새 출발을 기대한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