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10 겨울과 아버지 (2)
  2. 2009.05.14 어떤 친구가 좋은가요?
  3. 2008.09.24 소풍

겨울과 아버지

충청로 2009.12.10 13:28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작가 이외수를 보면 ‘앙상한’ 겨울이 연상될 정도로 말라깽이다. 그는 청년시절 자신의 몸을 모질게 연소시켰다. 됫병 소주 2개를 들이켰고, 담배는 하루 예닐곱 갑씩 태웠다. 3일 정도는 우습게 굶었고, 라면 한 개로도 일주일을 버텼다. 1970년대 이외수의 퀴퀴한 자취방은 작가 지망생들의 아지트였다. 손님들은 소주와 라면, 시래기나 비지를 사왔다. 겨울엔 돈이 없어 연탄의 ‘뜨거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체온으로 데운 이불로 버텼다. 애인에게 차인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차디찬 자취방에서 세상을 향해 외쳤다. “아! 쓰발, 외로워….” 45㎏의 깡마른 몸으로 쓴 그의 글들이 차디찬 골방처럼 저며 오는 것은 바로 ‘겨울처럼’ 살았던 인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도 ‘겨울’을 닮았다. 얼굴엔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겼고, 앙상한 뼈마디엔 찬바람이 몰아친다. 화가 나면 두 눈에 불꽃이 튀던 아버지. 너무나 무서워 반항할 수도 없었던 아들이었기에 그 속절없는 꺾임에 눈물이 난다. 내 눈물을 내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되면 아들도 내 눈물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도 울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전거를 잘 고쳤다. 10여 년을 통학하면서 자전거포에 갔던 기억이 없다. 지금 내게도 아들 자전거 두 대가 있다. 그 자전거를 이제 내가 고치고 있다. 편식을 탓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들의 편식을 나무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성(父性)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절, 사부곡(思父曲)이 절절해지는 이유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겨울을 닮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 최근 110개국이 모여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가졌다. 이들의 회동 목적은 지구 온도를 2도 내리자는 것이다. 2도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과학자들은 2도를 지구환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문턱’으로 본다. 지금까지 온난화로 인해 지구 온도는 0.6도쯤 올라갔다. 1도가 오르면 만년빙이 사라지며 가뭄과 산사태가 일어난다. 지금보다 2도가 상승하면 이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바다생물들이 소멸된다. 3도 오르면 우림지대와 정글이 무너진다. ‘떡방아 찧는 토끼’가 사는 달(月)도 매년 3.8㎝꼴로 지구서 멀어지고 있다. 달이 처음 생성될 때만 해도 약 2만 2530㎞ 지점에 있었지만 지금은 37만 149㎞나 떨어져 있다. 달의 낮·밤의 기온 차는 섭씨 200도 이상이다. 달이 지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은 ‘봄 같은 겨울’이 오고 있는 징조인지도 모른다.


 ▶2009년 겨울은 어둡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 겨울의 우울은 시대의 불통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한 해를 노추(老醜)로 장식하지 않으려면 버려야 하고 비워야 한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다 버림으로써 살아난다. 오래된 찻집, 창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찻잔의 커피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 따뜻하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따뜻한 입김이 불어온다. 겨울도 마주하니 따듯한 것이다. 겨울은 헐벗기에 서정시를 낳는다. 개인적으론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금기시한다. 어디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해마다 다사다난이니, 다사다난이란 말은 아무짝에도 못 쓸 명사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후회 없도록 매조지해야 한다. 누군가가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osted by 나재필

 ▶박지성은 외국 생활 10년차다. 일본 J리그와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을 거쳐 2005년 7월부터 세계 최고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그는 ‘산소탱크’라는 닉네임처럼 쉼 없이 뛰어 프리미어리그를 열광케 한다. 다른 선수들이 음주 추태와 추문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스캔들 한 번 낸 일이 없다. 일주일 중 4일은 팀에서 보내고 3일은 칩거한다. 영화를 보러 나가는 일도 없이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책을 읽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생활의 전부다. 술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범생이’다. 이처럼 팔팔한 나이에 수도승처럼 지내는 것은 자기 목표 때문이다. 키가 크고 싶어 개구리다리를 삶아먹고, 평발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악바리처럼 뛰었던 것도 그의 특별한 목표의식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축구를 잘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친구 또한 축구를 선택했다.


 ▶소설가 김훈은 하루 2갑씩 40년간 친구처럼 지낸 담배를 끊었다. 그는 이제 꿈에서만 피운다. ‘골초’ 이외수는 하루 8갑까지 피웠던 담배를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찧어가며 35년 만에 끊었다. 소설가 이문열도 DJ 정부 시절 자신의 ‘책 장례식’이 벌어진 뒤 끊었다. 386세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도 단박에 끊었다. 이들에게 담배는 ‘친구’였다. ‘술 공화국’ 대한민국의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은 무지막지하다. 지난해 성인 1명이 마신 맥주는 107병, 소주는 72병이었다. 이는 화병 나는 경기침체 탓이 가장 컸다. 소주만 34억 5000만 병을 마셨는데 1년 전보다 3병을 더 마신 셈이다. MB정부가 출범하면서 유행한 소폭(소주+맥주) 음주문화도 이를 거들었다. 그러나 술과 담배처럼 치명적인 ‘친구’는 없다. 동시에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위로하는 친구도 없다. 건강을 해쳐 수명을 단축시키는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지독한 우정’. 이처럼 친구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검(檢)이 ‘대통령의 친구’를 향하고 있다. 검찰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수사에 나선 것이다. 대선 당시 MB 측은 각종 언론에 ‘대표적인 친구’로 항상 천 회장을 내걸었고, 고비 때마다 항상 함께했다. 이런 와중에 여당의 ‘집안’이 들끓고 있다. 친이(親李), 친박(親朴)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일종의 ‘친풍(親風)’이다. 여권 내에서는 한나라당이 ‘두나라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도 새어나온다. 이 내전(內戰)의 진앙엔 ‘선거의 여왕’이자 ‘정치 9단’인 박근혜 전 대표가 있고 ‘경제 9단’ MB가 있다. ‘친구’처럼 손을 잡고 정권을 이룬 그 때나, 서로 말 안하고 등 돌린 지금이나 서로 친하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꼼수를 쓰는 ‘잔머리 정치’도 눈에 보인다. 언제까지 ‘친구’와 ‘소통’을 가장한 불통의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그들의 ‘꽃놀이패’를 지켜보는 것에 국민들은 지쳐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담배에 불을 붙였더니, 이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 슬픈 일이 날아와 앉는다’던 시인의 노래가 떠오른다. 어쩌면 인생에 끝까지 친구로 남는 것은 모두 쓴맛을 지닌 것들인지도 모른다. 소주, 담배, 커피…. 결국은 정치도 쓴 맛이다. 이렇듯 쓴 것들만 찾고 쓴 맛을 즐기는 세태는 그만큼 세상 꼬락서니가 달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 9단, 경제 9단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민심의 곁에서 쓴 소주 한 잔 기울여주는 그런 살가운 친구가 필요하다.

Posted by 나재필

소풍

충청로 2008.09.24 21:46
 ▶시인 천상병은 밥보다 막걸리를 더 사랑했다. 그는 '걸레스님' 중광, '춘천 거지'  이외수와 함께 3대 기인(奇人)에 속한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극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기인에서 '폐인'으로 타이틀을 바꿔단다. 동백림 사건은 베를린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에 구경삼아 소풍을 갔는데 '간첩'으로 몰린 희대의 사건이다. 이들에겐 '반공법'이 적용돼 사형, 무기징역 등이 처해졌다. 그러나 그는 한 잔의 커피와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비가 남았다며 행복해했다. 친구에게 막걸리 값으로 100원과 500원을 '동냥'하면서도 가난을 즐겼다. 그는 죽는 날까지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며 자신의 시 '歸天'(귀천)처럼 세상을 사랑했다. 그의 인생은 소풍이었다. 그에게 일상은 막걸리 한 잔이었고, 인생은 잠깐 놀러왔다 떠나는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화가 고흐는 사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예술성에 천착했던 그의 작품은 생전에 딱 한 편만 팔렸는데 그것도 친동생이 몰래 산 것이다. 매일 독주로 소일하던 그는 단골 술집에서 고갱을 만났고, 화가 공동체를 꿈꿨지만 결국 흐지부지 됐다. 고흐와 고갱은 절교했고 슬픔에 빠진 고흐는 귀를 잘라버린다. 결국 고흐는 정신병동을 오가다 자신이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란 작품처럼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는 자살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장례식을 거부당했고 수레에 짐짝처럼 실려 동토(凍土)에 묻혔다. 그의 삶은 소풍이 아니라 광풍(狂風)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평균 34명이 자살한다. IMF(외환위기) 때의 19.9명보다도 2배가량 뛴 수치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수는 1만 2174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뛰어넘었다. 게다가 20대가 전체의 26%를 차지할 만큼 '꽃다운 청춘'들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단연 1위다. 이는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 풍조, 가난과 홀대, 실직과 실업, 성적지상주의 등 삶의 코너에 몰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자살의 방조자는 국가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 빈자(貧者)의 희망을 꺾는 부자 부동산정책, 가진 자가 없는 자의 것을 탐욕하는 수도권정책, 보수와 진보가 허구한 날 퉁바리 놓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끼리끼리 '꽃놀이패'로 산다.


 ▶1774년 발표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남의 약혼녀를 사랑한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괴테가 절친한 친구의 자살과 자신의 실연(失戀)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 하지만 소설이 출간된 뒤 젊은이 사이에서는 '모방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안재환의 자살후 연탄가스를 이용한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이 생겼다고 한다. 개인 빚 780조 시대. 1인당 1600만 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사는 사람들의 삶이 즐거울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풍'을 떠나기 전, 남아있는 자의 눈물을 떠올려보라.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생을 포기한다면 남은 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잘살아보자는 웰빙(Well-Being)보다 올바르게 죽는 웰다잉(Well-Dying)이 뜨는 이유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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