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12.10 겨울과 아버지 (2)
  2. 2009.10.03 이 시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3. 2009.03.05 나이 마흔 두 개, 잔차맨의 추억
  4. 2008.09.16 아버지2
  5. 2008.09.11 아버지

겨울과 아버지

충청로 2009.12.10 13:28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작가 이외수를 보면 ‘앙상한’ 겨울이 연상될 정도로 말라깽이다. 그는 청년시절 자신의 몸을 모질게 연소시켰다. 됫병 소주 2개를 들이켰고, 담배는 하루 예닐곱 갑씩 태웠다. 3일 정도는 우습게 굶었고, 라면 한 개로도 일주일을 버텼다. 1970년대 이외수의 퀴퀴한 자취방은 작가 지망생들의 아지트였다. 손님들은 소주와 라면, 시래기나 비지를 사왔다. 겨울엔 돈이 없어 연탄의 ‘뜨거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체온으로 데운 이불로 버텼다. 애인에게 차인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차디찬 자취방에서 세상을 향해 외쳤다. “아! 쓰발, 외로워….” 45㎏의 깡마른 몸으로 쓴 그의 글들이 차디찬 골방처럼 저며 오는 것은 바로 ‘겨울처럼’ 살았던 인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도 ‘겨울’을 닮았다. 얼굴엔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겼고, 앙상한 뼈마디엔 찬바람이 몰아친다. 화가 나면 두 눈에 불꽃이 튀던 아버지. 너무나 무서워 반항할 수도 없었던 아들이었기에 그 속절없는 꺾임에 눈물이 난다. 내 눈물을 내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되면 아들도 내 눈물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도 울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전거를 잘 고쳤다. 10여 년을 통학하면서 자전거포에 갔던 기억이 없다. 지금 내게도 아들 자전거 두 대가 있다. 그 자전거를 이제 내가 고치고 있다. 편식을 탓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들의 편식을 나무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성(父性)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절, 사부곡(思父曲)이 절절해지는 이유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겨울을 닮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 최근 110개국이 모여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가졌다. 이들의 회동 목적은 지구 온도를 2도 내리자는 것이다. 2도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과학자들은 2도를 지구환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문턱’으로 본다. 지금까지 온난화로 인해 지구 온도는 0.6도쯤 올라갔다. 1도가 오르면 만년빙이 사라지며 가뭄과 산사태가 일어난다. 지금보다 2도가 상승하면 이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바다생물들이 소멸된다. 3도 오르면 우림지대와 정글이 무너진다. ‘떡방아 찧는 토끼’가 사는 달(月)도 매년 3.8㎝꼴로 지구서 멀어지고 있다. 달이 처음 생성될 때만 해도 약 2만 2530㎞ 지점에 있었지만 지금은 37만 149㎞나 떨어져 있다. 달의 낮·밤의 기온 차는 섭씨 200도 이상이다. 달이 지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은 ‘봄 같은 겨울’이 오고 있는 징조인지도 모른다.


 ▶2009년 겨울은 어둡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 겨울의 우울은 시대의 불통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한 해를 노추(老醜)로 장식하지 않으려면 버려야 하고 비워야 한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다 버림으로써 살아난다. 오래된 찻집, 창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찻잔의 커피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 따뜻하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따뜻한 입김이 불어온다. 겨울도 마주하니 따듯한 것이다. 겨울은 헐벗기에 서정시를 낳는다. 개인적으론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금기시한다. 어디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해마다 다사다난이니, 다사다난이란 말은 아무짝에도 못 쓸 명사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후회 없도록 매조지해야 한다. 누군가가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osted by 나재필
▲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짧은 연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하는 민족 대이동이 예상된다. 경기불황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고향은 항상 넉넉한 인심으로 반겨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가족이 밝은 표정으로 고향집으로 향하고 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산 너머에 보름달이 휘영청 걸렸다. 바람은 고요를 차고 고향 뜰 멍석을 배회한다. 노랗게 익은 달무리는 햇곡식과 햇과일을 넉넉하게 비추고, 마을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밤(乙夜)까지 흥타령에 젖는다. 옛날에는 보름 전 3일 동안 반달일 때보다 달빛이 12배 정도 강해 여느 때보다 열심히 쟁기질을 하고 농작물을 돌봤다. 달은 달력(月曆)의 주체로 씨 뿌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 절기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한 달은 달님이 쉬지 않고 29.5일 동안을 열심히 돌아서 제 자리로 온 시간이다. ‘이태백이 놀던 달’, ‘해님이 살다 버린 쪽박’은 한가윗날 베일을 벗고 보름달로 차오른다. 그 달님은 진짜 고향의 얼굴을 빼다 닮았다.

▶니체가 말한 대로 20세기 초에 ‘신(神)이 죽었다’면 21세기는 ‘아버지’들이 죽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힘에 겹다. 남자는 약해선 안 되고 어떠한 고통이라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남성다움의 고통을 강요받기에 눈물도 흘릴 수 없고, 민주적이거나 다정다감한 아버지로의 ‘전향’도 꿈꾸지 못한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기에 ‘친구’ 같은 부자관계도 아니다. 엄하지도 친하지도 못한 이 ‘어정쩡한’ 아버지들의 슬픈 독백은 아프기까지 하다. 경기불황기의 3대 기호식품은 소주와 라면, 담배다. 남자들은 눈물로 끓인 라면에 소주와 담배를 몸 가득 쓸어 넣는다. 세상에 대한 토악질이 날 때까지 그렇게 진부한 ‘쳇바퀴의 삶’을 산다. 한 해 동안 소주 34억 병, 946억 대의 담배를 피우는 대한민국 남자들. 술잔은 남자의 무기력함을 감추기 위한 뜨거운 증류고, 담배 한 개비는 시름을 태우는 무서운 연소(燃燒)다.

▶명절 때 친정에 갈 수 없는 며느리들을 위해 한가위 전후에 ‘반보기(中路相逢)’라는 풍습이 있었다. 시집과 친정의 중간쯤에 있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어머니와 딸이 만나 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눈물겨운 상면이었다. 지금은 ‘반보기’가 사라졌지만 음식노동에 던져진 주부들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졸보기’다. 더더욱 슬픈 현실은 현대판 이산가족인 원(遠)거리 가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귀향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구의 명절’을 보낸다. 취업, 가난, 돈벌이 등의 이유로 떨어져 사는 원거리 가족은 270여만 가구다. 처자식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부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홀로 떨어진 펭귄 아빠, 경제적으로 풍족한 ‘깍짓동’ 독수리 아빠, 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갈매기 아빠, 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보낼 재력이 없는 참새 아빠 등이 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그릇은 넘친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독거노인은 118만 명이다. 도박중독에 걸린 사람은 359만 명에 이르고, 올 들어 8만 명이 개인파산 신청을 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성인 10명 중 2명은 불면증을 앓는다. 미취업자, 생계 곤란자, 결혼적령기를 넘겨 아직도 미혼인 사람들에게 한가위는 한(恨)이다. 이들은 고향이 있어도 고향에 가길 꺼린다. 남이 추석이라 하니 그냥 추석인 것이고, 때때옷 입은 아이들이 추석이라 하니 그냥 웃는 것이다. 마을 뒷동산 솔버덩 위에 뜬 보름달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품을 수 없는 것은 저마다 느끼는 ‘달(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 한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Posted by 나재필

파란색은 큰아들, 빨간색은 작은 아들 자전거. 대당 14만원쯤 한다. 왼쪽 파란색 자전거로 대전~송탄까지 간 적이 있다. 내 다리를 대신해 애써준 고마운 자전거다. 말처럼 묶여있는데 어쩔수 없다. 파란색 자전거는 한번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 안장까지 빼가는 세상이니 모두들 도둑놈 조심~

 아버지가 불혹을 맞았을 때 내 나이 12살이었다. 불혹이던 아버지는 칠순을 이미 넘겼고 내 나이도 마흔 두 개다. 화가 나시면 두 눈에 파란 불꽃이 튀시던, 그 강골의 아버지가 이제는 약골이 되셨다. 너무나 무서워 반항할 수도 없었던 학창시절. 밭고랑으로, 야산으로 줄행랑치던 아들이었기에 그 속절없는 꺾임에 더 눈물이 난다. 십 오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던 우리 집엔 자전거가 세대였다. 나와 형, 아버지의 자전거. 그야말로 ‘잔차맨(자전차맨)’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체인이 엉키거나, 빵꾸가 나거나, 고장이 났을 때 기술자처럼 고쳤다. 구리스(grease, 윤활유)를 바르고 브레끼(브레이크)를 단단히 조이는가하면 뒷바퀴에 있는 복잡한 다마(구슬) 조합까지도 거뜬히 해냈다. 때문에 자전거포 갈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내게도 자전거 세 대가 있다. 두 명의 아들에게 각각 1대씩 배속하고 나머지 한 대는 심심풀이용으로 내가 타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가 해왔던 것처럼 아들의 자전거를 내가 고치고 있다.(그러나 아버지처럼 고치지는 못한다). 별로 말이 없었던 나에게 말 좀 하라고 다그치던 아버지처럼 이제 나도 아이들에게 대화를 독촉하고 있다. 편식을 탓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들의 편식을 나무라고 있다. 커서는 아버지처럼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도 아버지처럼 닮아가고 있다. 이제 아버지의 얼굴에도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겼고, 앙상한 뼈마디엔 찬바람이 몰아친다. 창백한 햇살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참으로 가슴아픈 '훈장'이다.

원래 임자는 와이프것이었다. 열심히 타고다니더니 궁뎅이가 아프다고 포기한 자전거다. 요즘은 내것이 됐다. 아파트밖에 세워놓았더니 녹이 슬어 기어등을 고쳤다. 그래서 아파트 계단으로 모셔왔다. 그런데 뭔가 외로워보인다.

 하드 파는 짐발이 아저씨가 나타나면 그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달짝지근한 하드 국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었던 추억과, 학창시절 계집애를 뒷좌석에 태우고 가던 추억이 봄바람처럼 기억소자를 끌어내는 자전거. 아파트 계단에 말처럼 묶여있는 자전거를 보노라니 주전부리 같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떨어지고 다시 올라타고, 또 떨어지고 다시 올라타고…. 그런 과정을 되풀이 해 자전거를 배우듯 힘들고 어려운 요즘, 다함께 페달 밟는 심정으로 꿋꿋하게 맞바람을 견뎌보자.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아버지2

忙中日記 2008.09.16 18:03

지상에 만개했던 청춘의 꽃이여.

세월의 무게에 검은 꽃 되었네.

한파에도,

풍파에도 푸른 싹 틔워야 하는 맹화(猛火).

不眠의 시린 밤 보내고,

곡괭이, 삽 들고 노동요 부르며

푸른 핏줄마냥 시린 새벽으로 나가시던 아버지.

잠에 빠진 식솔의 아침보다

배꼽시계, 두 시간이나 빨랐던 아버지.

우리는 그 첫새벽의 노동을 알지 못했다.

아오지 탄광의 그 강제노동을 알지 못했다.

천금같은 내 새끼.

남들에 기죽을까, 남 눈에 밟힐까

윗마을 김씨에게 공납금 미리 꿔두고,

문방구 찰흙보다 더 찰진 산기슭 흙으로

준비물 챙겨주시던 궁벽의 촌부.

사과 한 짝 등짐매고

눈물 한 짐 목에 걸고

삼년 부은 곗돈 털어

지인 찾아 자식안위 읊조리고.

강한 척, 안 아픈 척

남몰래 뼈마디 주무르던,

남몰래 눈물줄기 으깨던 엄니 같던 아버지.

희망의 강은 함께

절망의 강은 혼자 건너시며

勇壯으로, 德長으로

노회한 황무지 개척하던 선구자 같던 아버지.

그 위대한 이름이여.

허리를 펴소서.


 70년대 후반 고향 수안보 온천엔 ‘가족탕'이라는 게 있었다. 가족 모두가 자그마한 탕을 통째로 빌렸다.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 모두가 발가벗고 목욕했다. 그것은 가족이 행하는 경건한 의식 같은 거였다. 목욕을 같이 하면 친해진다. 아낌없이 보여주고 부끄럼없이 있다보면 친밀도가 쌓여간다.  요즘 들어 아버지는 알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가 부끄럼을 탄다. 그것은 늙어가는 시계추의 쓸쓸함이다. 무서웠던 아버지가 무섭지 않다. 차라리 무서웠으면 할 때가 있다. 아버지가 알몸을 보여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아버지의 주름잡힌 세월을 보며 울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을 보며 처절히 흐느끼고 있다. 자식의 그늘이 되어주었던 아버지가 어느새 그늘이 되다니.

Posted by 나재필

아버지

忙中日記 2008.09.11 14:17
 아버지, 지팡이가 되셨다. 꼬부랑이 되셨다. 얼굴엔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겼고, 앙상한 뼈마디엔 찬바람이 몰아친다. 창백한 햇살이다. 얼마 전에는 당뇨까지 생겨 잔혹한 하루하루와 싸우고 있다. 화가 나시면 두 눈에 불꽃이 튀시던, 그 강골의 아버지가 약골이 됐다. 너무나 무서워 반항할 수도 없었던 학창시절. 밭고랑으로, 야산으로 줄행랑치던 아들이었기에 그 속절없는 꺾임에 더 눈물이 난다. 십 오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기에 우리 집엔 자전거가 세대였다. 나와 형, 아버지는 시쳇말로 ‘잔차맨(자전차맨)’이었다. 아버지는 자전거 체인이 엉키거나, 펑크가 나거나, 고장이 났을 때 기술자처럼, 아니 귀신처럼 고쳤다. 10여 년을 통학하면서 자전거포에 간 기억이 없다.

 
지금 내게도 자전거 두 대가 있다. 그 자전거를 이제 내가 고치고 있다. 그 독한 아버지 대신 내가 두 아들의 체인을 고치고 있다. 말수가 적었던 나에게 입에 곰팡이 나겠다고 다그치시던 아버지처럼 내가 아이들에게 대화를 독촉하고 있다. 편식을 탓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들의 편식을 나무라고 있다. 커서는 아버지처럼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무서운 피다.


 지금 창밖엔 적갈색의 단풍이 겨울 길목서 가볍게 몸서리치고 있다. 저 단풍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저 낙엽을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단풍은 나무와 잎이 이별하는 것이다. 곧 사라질 것들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이다. 모든 걸 떠나보내고 쓸쓸해진다. 하루 25km 남하하는 단풍. 그 단풍처럼 색 바랜 아버지, 낙엽처럼 쓸쓸한 노년의 아버지, 저 빛바랜 낙엽처럼 노쇠한 아버지를 보며 난 뒤돌아 운다. 어쩌면 그렇게도 마른 낙엽을 닮았는지. 너무나 강해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쓰러짐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들키지 않도록 속절없이 운다. 내 눈물을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되면 아들도 나의 눈물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도 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젊은 객기로 돈도 없이 술을 진탕 먹고 아버지께 술값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아무 제재도 없이 선뜻 술값을 내 주셨다. 학생이 무슨 술이냐고, 그것도 공술을 먹고 다니느냐고 몽둥이 찜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아버지는 장롱서 꼬깃꼬깃한 돈을 내주셨다. 오히려 그 묵언이, 무폭력이 질풍노도의 소년에게는 더 무서운 가르침이었다.


어느새 나도 아버지의 불혹을 맞았다. 또래의 어린 손자를 잃어버린 할아버지가 부모들도 포기한 어린 핏줄을 찾기 위해 엿장수가 되었다는 얘기가 이제는 아프게 박힌다. 그 엿가락 소리는 할아버지의 절규다. 나보다 29번의 겨울과 29번의 봄을 더 보낸 아버지. 시지푸스의 노동처럼 그 끝없는 세월을 노동으로 산 아버지. 남들 아버지처럼 달마다
누런 월급봉투를 가지고 나타난 적이 없는 블루칼라였지만 자식을 화이트칼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한 아버지,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사소서.

Posted by 나재필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