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이완구 충남지사가 금주 중 ‘지사직’을 사퇴하는 초강수를 둘 전망입니다. 세종시 원안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청여론의 심각성을 전달하기 위한 암묵적인 행보입니다.
한 도의 행정을 맡은 최고 책임자인 지사(知事)가 국가·사회를 위해 몸을 바치려는 지사(志士)가 되기로 결의한 겁니다. 어찌됐든 이완구 지사의 그 고매한 뜻을 지지합니다.
 이 지사는 "국가경영에 있어 철학과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국가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관계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유민주국가에서 이 것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법’과 사회적 자본인 ‘신뢰’라는 두 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지사는 ‘그래도 지사직을 갖고 투쟁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만 도민을 받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좌고우면해선 안되고, 충청민의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충청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충청투데이 11월 30일자 1면 기사 발췌>
 
이완구 지사는 충남 홍성 사람으로 제15회 행시에 합격해 국회의원, 충남북경찰청장을 역임했습니다. 국제최고경영자상,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 한국언론인연합회 '올해의 정치인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도의 행정을 책임지는 도백(道伯)이 자신의 명예로운 직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손해볼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가 도지사직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처럼' 자리에 연연해 아부와 아첨, 시류에 편승하는 그런 '정치'보다 수백번 낫습니다. 그의 결단이 충청인의 멍울 진 아픔을 대변하고, 충청인이 대동단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속보>이완구지사 12월 3일 전격 사퇴

이완구 충남지사가 3일 정부의 세종시수정 방침에 반발,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 원안추진에 도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해 왔다"며 지사직 사퇴를 선언했다.
 지난 95년 민선자치제도 시행 이후 현직 지사가 중도에 사퇴한 것은 2003년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사직한 이후 사상 두번째다.
 이 지사의 사퇴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의 세종시 갈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또 여권의 정국운영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방침에 반발해 3일 이완구 충남지사가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도청으로 들어서다 도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애절한 사퇴철회 권유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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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사쿠라 잎이 산화하듯 스러질 것이며, 일본 왕을 위해 꽃처럼 웃으며 죽겠습니다.” 군국주의 광풍 속에 죽어간 일본인들의 처절한 이별가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포로가 돼 수모를 겪지 말고 사무라이답게 자살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실제로 이 명령에 따라 수십만 명의 일본인이 자진해서 죽었다. 하지만 정작 도조 자신은 패전 후 죽음을 두려워해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연합군 포로가 됐다. 도조는 재판정에서 일왕의 전쟁 책임론을 번복하는 등 변심을 되풀이하다 교수형에 처해졌다. ‘깡다구’ 좋다는 그들도 죽음 앞에선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는 3류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일왕 히로히토는 63년 간 ‘살아있는 신’으로 불린 특A급 전범이다. 히로히토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해 인간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실험한 ‘악마의 소굴’ 731부대를 만들었다. 패망 후에는 기소를 면하기 위해 731부대 연구물을 미국에 넘겨주는 추악한 거래도 했다. 또한 꽃다운 10대 여성들 20여만 명을 성노예(위안부)로 만들어 영혼을 짓밟기도 했다. 이 같은 만행으로 무고한 아시아인 2000만 명, 일본인 300만여 명, 미·영 연합군 6만 명이 희생됐다.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땐 12만 명에 달하는 조선 양민의 코와 귀가 ‘쪽발이’들의 전리품(戰利品)이 됐다. 일본의 원죄가 400년을 넘어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 4400명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국권침탈에 협력한 자, 경찰 간부로 재직한 자, 친일작품 활동을 한 자, 판·검사로 재직한 자, 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한 자가 망라돼있다. 그러나 어디 친일(親日)한 자가 4400명뿐이겠는가. 4만 명, 아니 400만 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국가가 없었을 때 ‘친일’은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살점을 뜯어내고, 서슬을 들이대는 것에 대한 ‘두려운 굴복’이었다. 비굴한 자는 앞잡이가 됐고, 굴욕에 항거한 자는 주검이 됐다. 친일파들은 쪽발이들의 사주를 받고 끄나풀 노릇을 하며 같은 민족을 암굴(暗窟)에 밀어넣었다. 밤에는 이슬의 잔영(殘影)에 숨어 감시하고, 낮에는 완장과 죽창에 기대어 양민을 이간질했다. 이들 앞잡이들의 비열함은 6·25전쟁 때 ‘낮엔 태극기, 밤엔 인공기’를 흔들며 세습됐다. 근래 친일파의 명수(名數)를 놓고 누가 빠졌다, 왜 넣었느냐 말들이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미 ‘죽고 없어진’ 친일1세대의 단죄가 아니라, 아직도 대한민국 전반에 뿌리박혀 있는 ‘앞잡이’ 사고방식의 청산이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을 총리로 발탁했다. 그러나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자 ‘총리 이회창’을 4개월 만에 경질했다. 요즘 정운찬 총리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선 ‘YS-이회창 궁합’과 닮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총리 발탁 시 ‘중도 개혁성향’으로 지명도를 쌓았고,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하겠다던 정 총리는 친이(親李) 노선에서 ‘예스총리’처럼 앞장서 걷고 있다. 대선 전부터 MB의 감세정책과 대운하사업을 강하게 반대했던 정 총리가 정권의 ‘영의정’이 된 후 ‘총대’를 멘 형국인 것이다. 세종시는 ‘탁상머리’에 앉아 계산기나 두드리며 ‘효율성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행정’이 세종시에 내려오면 나라가 절단 나는가. 기업·혁신도시도 부족한 판국에 ‘기업’ 몇 개를 세종시에 툭 던져주면 끝날 일인가. MB정부의 완장을 찬 ‘고향 총리’가 고향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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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엽록소 잔뜩 머금은 초록을 꿈꾸며 가지에 매달리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된다. 그러나 낙엽은 주검이 아니다. 봄과 여름이 바람과 햇빛으로 살갗을 태우고 추해지기 전에 자신을 버리는 성스러운 의식(儀式)이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무거워서가 아니라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것’은 남성 DNA에 고독과 상처라는 인자가 각인돼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학으로도 증명 못한 쓸쓸함의 잔상, 그것이 찬바람에 실려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 받은 영혼들은 강으로, 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병약하고 외돌토리 같은 삶을 위로받는다. 강(江)은 그래서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4대강 사업을 두고 민주당은 ‘5대 거짓말’이라고 했다. 민주당 백서에 따르면 5대 거짓말은 홍수 예방, 물 확보,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 강 살리기다. 예컨대 국가하천의 홍수 피해액은 전체 홍수 피해액의 3.6%에 불과하다. 낙동강에서 부족한 물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정작 물이 부족한 곳은 섬진강이다. 66개 구간 중 51개 구간이 이미 2급수인데 4대강을 2급수 이상으로 끌어올린다고 설레발이다. 죽은 강을 살린다고 하지만 4대강 내 640곳의 수질은 70%가 양호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4대강 예산의 반만 돌려도 등록금 5조 원 지원, 고교 무상교육(2조 4000억), 무상급식(3조), 장애연금(2조)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 20만 명 전환(1조 2000억), 경로당 지원(2800억), 결식아동 16만 명(600억)을 도울 수 있다. 이런 판국에 4대강 예산은 1년도 안 돼 8배나 뛰었다.

 풍수(風水)에서는 물을 길로 본다. 그래서 물길이다. 물길은 유통과 소통의 길이다. 수나라 양제는 북경에서 항주까지 1800㎞에 이르는 ‘경항운하’를 팠지만 조선 태종은 ‘남대문 운하’를 파자는 건의에 대해 “우리나라는 모래와 돌이 많아 물이 머물지 못하므로 중국을 본떠 운하를 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치수(治水)의 본보기다. 두 도시 모두 100여 개의 섬과 섬 사이를 500여 개의 다리로 이었다. 또한 물길을 따라 집을 지었다. 맨땅을 파서 없던 물길을 낸 것이 아니라 물 위에 친환경 물길을 낸 것이다. 여기에 낙동강 공구 컨소시엄에 선정된 기업 여러 곳이 MB의 모교출신이라는 점과 4대강 사업이 낙동강에 집중돼 있는 것도 마뜩찮다. 잘난 체 하는 인간들이 녹색, 녹색, 녹색성장을 외치며 보, 댐을 만들고 산야를 파헤치는 것도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MB는 4대강 사업을 말하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江山) 개조론’을 역설했다. “강과 산을 뜯어고쳐 산에는 나무가 가득하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민족의 행복이다.” 한강의 기적과 청계천 기적 중심에 있던 MB가 4대강 사업을 서두르는 것엔 정책적 편향이 있다. 세종시가 21개월간 ‘수심’에 잠길 동안 4대강 사업은 5개월 만에 ‘물 흐르듯’ 일사천리다. ‘삽질’의 대명사 토목공사가 아니라지만 ‘불도저’는 자연과 풍광을 내시경 하기 위해 이미 시동을 켰다. 4대강 사업의 화끈한 추진을 보면서 느려터진 ‘세종시’ 추진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강변에 사는 촌부들이 습담(濕痰)과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걸망을 싸는 것은 강을 하늘의 뜻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입맛대로 성형(成形)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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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건설현장 위로 먹구름이 가득하다. 거짓말 정부와 간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인공먹구름이다. 언제쯤 저 먹구름이 걷히고 진정한 '행복도시'가 만들어질런가.   충청투데이 사진부 자료

▶당나라 양귀비는 촉주사호(蜀州司戶) 양현염의 딸로 본명은 양옥환이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수왕과 현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양귀비는 글래머였는데 항간에선 ‘하얀 돼지’라 불렸을 정도로 살집이 많았다. 또한 미용(美容)을 위해 말을 타고도 한두 달 걸리는 남방지역의 과일 ‘여지’를 구해와 애용했다. 양귀비는 향을 바르다 못해 환약으로 만들어 삼키고, 목욕도 향수 물로 했다. 양귀비 목욕물이 성 밖으로 흘러가면 민초(民草)들은 그 향에 미혹돼 오금을 못 펼 정도였다. 그는 한 떨기 꽃이었지만 황제의 성(性)을 농락한 요화(妖花)였다. 당시 당나라 황제의 주요 임무가 자손번성이었기에 후궁전엔 미인들이 4만 명이나 대기했다. 양귀비는 보잘 것 없는 두해살이 ‘잡초’로 시작해 세상에서 가장 미혹스런 '명화'
(名花)’로 만개했다.

▶‘강아지풀’은 똥개만큼이나 번식력이 왕성해서 흙 한 줌만 있으면 황무지에서도 피어난다. 망초나 쇠비름, 마디풀도 잡초로 태어나 약초가 된다. 별꽃나물과 광대나물도 처음엔 잡초라는 이름표를 달지만 나물로, 약초로 대접받는다. 벼나 콩, 밀도 인간이 손을 대기 전까진 볼품없는 야생초였다. 콩을 재배하는 동안 옥수수나 고구마가 자라면 이 또한 잡초신세다. 여름날, 후끈 달아오른 도로변엔 열기를 피해 밤에만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이 있다. 해가 지고 선선해지면 꽃을 활짝 피워 야행성 곤충인 박각시나방을 불러들이는 지혜를 발휘한다. 잡초는 바람 불면 쓰러지고, 밟히면 뭉개지지만 끝내 다시 일어난다. 그래서 ‘잡초’는 온갖 시련과 억압에도 삶을 지키는 불멸의 ‘민초(民草)’를 닮았다.

▶‘잡초’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못다 쓴 회고록’에서 “나의 실패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성공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실패 원인으로 당정분리, 독선과 아집, 무리한 주문, 언론 흔들기, 관료의 무력화, 말씨와 품위를 들었다. 그리고 ‘대통령 하지 마라’는 대목에서 “역사는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민심에 있다”며 “깨어있는 민심이 대통령보다 역사발전에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민초들의 생각을 읽지 못한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었다. 그는 생전에 ‘잡초론’을 피력하며 사리사욕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는 정치인,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정치인, 거짓말 정치인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약초가 아니라 독초라는 것이다.

▶‘조선 최고경영자(CEO)’ 세종대왕은 소소한 일은 신하에게 일임했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같이 왕의 결단이 필요한 중대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 추진과정을 꼼꼼하게 챙겼다. 목표를 정하고 결단을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신하들과 의논했다. 백성의 지지가 없으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광대한 대륙을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성공은 몽골군의 기동력뿐만 아니라 남다른 ‘포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적군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했으며 ‘잡초’인 민초들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했다. 지금 대한민국 파문의 중심에 세종시가 있다. ‘잡초’였던 사람이 ‘잡초’를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이든, 총리든 처음엔 ‘잡초’였다. 그러나 이제 ‘잡초’ 티를 내지 않는다. 되레 잡초를 뽑으려고만 하고 있다. 신의를 잃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사람을 잃는 것은 정치력을 잃는 것이다. 민초를 짓밟는 정치는 유통기한이 있다. 지금 필요한 CEO는 ‘잡초’를 ‘화초’로 만드는 민생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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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거미줄 뒤로 보이는 세종시 입간판.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전과 취임 후의 '말말말'입니다.

<대통령 당선前>

2007년 3월 7일
"행정도시 건설은 예정대로 될 것이다. 축소 등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 대전시당 방문
8월 2일
"행정의 일관성 등을 감안해 중도에 이전계획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행복도시를 행정기능과 과학, 산업, 문화 등의 기반시설이 함께 하는 자족능력을 갖춘 도시로 육성할 것이다" -오송역 방문
11월 28일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 건설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행복도시건설청 방문

<대통령 당선後>

2008년 3월 20일

"내가 행정도시건설청장과 본부장을 바꾸지 않은 것은 행정도시의 지속적인 추진을 말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다" -충남도청 방문
5월 20일
"부처 통폐합 때문에 몇개 부처가 줄어들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함이 없다" -청와대에서 충남지사에게
2009년 6월 20일
"당초 계획대로 진행 중이고, 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여야대표 회동
10월 17일
"정권에는 도움이 안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 -장차관 워크숍

 대통령 되기 전에 했던 말들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하는 게 눈에 확 뜨입니다. 물론 정치를 하다보면, 국정을 이끌다보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말'이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철썩같이 믿었던 충청인들만 바보꼴이 됐습니다. 세종시가 효율이든, 자족이든 유령도시든, 행복도시든 지금와서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충청권 표심은 그때 이회창 총재의 텃밭임에도 MB에게 표를 더 주었습니다. 이제는 표심 얻을 일이 없다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정운찬 총리의 행보도 웃깁니다.

 그는 총리 내정후 "대통령께 할 말은 하겠다"며 소신있는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청문회를 통과한 후 '영의정'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또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세종시는 비효율적이기에 대학 연구소나 기업 등이 내려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공주 연기지역민들이 먹을거리가 더 풍부해진다고 말입니다. 언뜻 보면 무슨 '적선'하는 듯한 말본새입니다. 이제는 내놓고 
9부2처2청을 이전하는 세종시 원안(原案)을 폐기 또는 대폭 수정돼야 한다는 결론을 슬그머니 흘리고 있습니다. 세종시가 기업도시나 과학벨트 끌어안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위기입니다.
 여기에 
20-30명 규모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종시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공주 출신의 정총리가 이제는 정권의 꼭두각시로, 나팔수로 세종시 축소에 총대를 멨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노릇입니다.
 정치인 여러분!
 애초부터 누가 행정도시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습니까?
 자기들 표 다 챙겨놓고 이제와서 효율이 떨어진다느니, 축소해야 한다느니 발뺌하다니요. 참으로 간사한 정치입니다. 아예 질질 끌다가 다음 선거때 또 한번 우려 드시지요. '멍청한 충청도 사람들' 또 표를 줄지도 모릅니다.
 수도권 의원들도 가슴에 손 얹고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자기들 지역구 아니니까 축소하자, 폐기하자 난리치는데, 자신이 나중에 나올 지역이라면 그런 소리 나왔겠습니까? 다 도둑놈들입니다.
 충청도 양반님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속고, 또 속고, 그러면서 또 속으니까요.
 거짓말 하는 정치인들은 상종을 하지 맙시다.
 자꾸 속으니까 자꾸 속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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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결과 41.2 VS 30%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상대로 세종시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결과 ‘원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41.2%로 ‘수정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30.0%)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9월 16일 조사 때는 원안추진 의견이 39.0% 였으나, 1개월 반 만에 2.2%포인트 높아진 것입니다.
 이는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안+α’ 발언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원안추진 의견이 지난 9월 조사에서 28.7%였던 것이 이번 조사에서는 38.5%로 올라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전남.광주(56.1% 대15.7%), 부산.경남.울산(47.5% 대 21.3%), 전북(47.5% 대 16.9%), 서울(44.4% 대 32.6%) 순으로 원안 추진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제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도 원안추진을 절대다수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나재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 추진 의사를 밝히며 세종시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선 가운데 25일 유한식 연기군수를 비롯한 군의회의원들이 군청 현관앞 임시천막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기=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요즘도 일부에서는 대통령을 ‘각하(閣下)’라 부른다. 물론 공식 호칭은 ‘대통령님’이고 사석에서는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을 딴 ‘MB’나 VIP로 불린다. ‘각하’는 원래 ‘전각(殿閣) 아래서 뵙는다’라는 뜻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과거엔 국무총리, 장관, 군 장성도 각하라 했는데 박정희 정부부터 대통령에게만 붙이는 존칭이 됐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까지도 각하로 불리다가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DJ정부 때부터 '대통령님'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대통령 각하님'이라며 존칭에 극존칭을 더해 굽실거리는 자들도 있다. 하기야 ‘각하’라 부르면 어떻고 ‘대통령님’이라 부르면 어떠랴만, 그 저의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에게 ‘사바사바’ 하면서 고언하고 직언할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한국정치의 불행이다.

▶박정희 정권 이전의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었다. 때문에 스스로를 ‘엽전’,  ‘짚신’이라고 폄훼했다. 깨어있는 지식인 장준하·함석헌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인 재야운동가 백기완도 “박정희는 정치적 반대자 3만 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 명을 못살게 했다”고 회고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새벽종’이 울리자 국민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초가집이 헐리고 새마을이 되는 걸 보면서 사고방식이 ‘해도 안 된다’에서 ‘하면 된다’로 바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민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제 서민을 위해 현장에서 직접 챙길 것”이라며 입버릇처럼 되뇌였다. 요즘 ‘박정희 재평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장정치’를 했던 박정희는 욕하면서 전두환에게는 ‘관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적 잣대, 이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부모를 총탄으로 잃었다. 1974년엔 문세광의 총탄에 어머니를 잃었고, 5년 뒤엔 김재규가 쏜 ‘배신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는 22세에 퍼스트레이디가 돼 5년을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 요즘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걸만한 ‘세종시’ 살리기에 나섰다. 주변의 정적(政敵)들과 중앙언론, 당정이 나서 세종시 백지화를 주장할 때 ‘약속’을 외치는 것이다. 권력의 배후에서 간신배처럼 밑이나 닦는 정치현실을 벗어난 박 전 대표의 행보는 강력한 결사(決死)다. 그것이 설령 정치적 계산일지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은 남자의 그 어떤 가벼움보다도 낫다.


▶세종시를 놓고 충청도 사람들이 분통 터지는 것은 ‘충청도는 어찌해도 괜찮다’라는 태도 때문이다. 세종시가 경상도나 전라도의 문제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MB는 ‘현장의 달인’이었다. 서울시장 때 모두가 반대했던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해 ‘책상’을 박차고 몸으로 뛰었다. 저돌성을 넘어 무모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특별대책반을 1년 동안 4300여 회나 출동시켜 청계천 상인들을 만나게 했고, 스스로도 현장을 찾아 설득했다. 그 밑거름으로 대통령까지 했다. 그런 MB가 세종시 문제엔 유독 ‘말’과 ‘발’을 아끼고 있다. 더구나 정책당사자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수정론을 외치는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였더라도 그렇게 당당했을까. 야비한 정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통령이 ‘세종시’ 현장에 서서 '청계천'때처럼 살피고 답하는 일이다.

Posted by 나재필
화창한 날씨를 보인 가운데 대전 중구 문창초 가을운동회에서 어린이들이 힘차게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거짓말 세상, 이 맑은 동심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정치적 거짓말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노태우 씨는 대선 때 약속한 ‘중간평가’를 하지 않았고, 김영삼(YS) 씨는 3당 통합 때 합의한 내각제개헌을 까먹었다.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던 전두환·노태우 씨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92년 김대중(DJ) 씨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약속 파기’라는 눈총을 무릅쓰고 복귀해 대통령까지 지냈다. 정몽준(MJ) 씨는 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을 한 후 하루 만에 번복해 ‘말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법과 원칙을 고수해 ‘대쪽’으로 불린 이회창 씨도 은퇴와 복귀를 반복, ‘제2의 DJ, 제2의 이인제’라는 비난을 받았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공약을 ‘밥’ 먹듯 하고 대권을 잡고선 ‘입’을 싹 닦는 파렴치한의 정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괴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최근 디지털 싱글 ‘콜미’를 발표하며 가수 전업을 선언했다.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환갑’의 나이에 아이돌 가수처럼 랩을 불렀다. 그는 “내 뒤에 선녀 12명이 있다. 2012년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 왔다. 눈빛으로 병을 고친다. 잠들기 전에 허경영을 부르면 젊어진다. 암도, 신종플루도 자신 때문에 못 들어온다. 내 아이큐는 430이다. 축지법·공중부양을 한다”고 허구한 날 허풍을 치고 있다. 자신을 아시아연방의 대통령, 돌아온 광개토대왕이라고 떠들며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의 발언도 한다. ‘허풍’ 허경영의 허무맹랑한 공약과 언동을 보며 대한민국의 ‘뻥짜’ 공약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거짓말의 강도는 확연히 다르지만 다 같은 ‘구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중원(충청)’을 장악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DJ, 노무현, 이명박(MB) 당선은 ‘캐스팅보트’라는 충청권 표심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MB는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지지율이 기대이상으로 높자 “국민들이 나를 보면서 약속을 하면 꼭 지킬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충청도는 7번 이상 ‘세종시’ 공언을 했던 MB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깜냥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고 공언했지만, 충청도를 대하는 말본새도 그렇고, 세종시를 다루는 품새도 영 마뜩찮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는 ‘여당의 배후’ 아래 총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충청인은 암울하다. 그가 총리로 내정되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했던 충청인은 이제 세종시가 ‘동네북’이 되지 않을까 개탄스럽다.


▶충청권은 세종시를 요구한 적이 없다.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고 '그들만' 재미를 보았을 뿐이다. 대통령의 공약만 믿고 따라온 500만 충청인, 고향의 상처를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원안추진을 기다리는 700만 출향인들은 참담한 심경을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박’보다 ‘호박’에 더 끌린다. 왜냐하면 달콤하지 않아도 솔직담백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건설은 국익의 논란을 떠나 민심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한다. 그저 표심을 얻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던진 ‘공수표’였다면 차라리 고개 숙여 속죄하라. 그리고 ‘다시는 뻥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쓸지어다.

Posted by 나재필

한화이글스 송진우 선수가 2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21년 선수생활을 마치는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아래는 펜들에게 절하는 모습.
사진=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2009년 9월 23일. 송진우가 은퇴했다.
 2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20년이 넘는 기간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관리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최다승을 기록한 송진우가 오픈카를 타고 '전설속으로' 떠난 것이다. 그는 한화이글스의 보배이기도 했지만 한국야구의 불세출 영웅이기도 하다.

 최다승(210승) 최다 탈삼진(2048) 최다이닝 투구(3003이닝)
 
 1979년 충북 증평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그는 고교 야구명문 세광고를 거쳐 빙그레 이글스(한화)에 입단했다. 그는 21년간 선수로 뛰며 어느 누구도 감히 깨기 힘든 대기록들을 그라운드에 심어놓았다. 1989년 4월12일 롯데와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프로에 데뷔한 송진우는 672경기에 출전해 210승 153패, 103세이브, 17홀드와 탈삼진 2048개를 기록했다. 모두 3003이닝을 투구하면서 1만 2708타자를 상대했고, 볼 4만 9024개를 던진 것이다. 10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 여기에 최고령 등판기록(43세 7개월 7일)기록도 세웠다. 21년간 프로생활을 한 그의 등번호 21번은 프로야구 통산 여덟 번째로 영구결번됐다. 한화 선수로는 장종훈(2005년), 정민철(2009년)에 이어 세번째다.

 "한국야구의 전설로 떠나다"

 독수리군단의' 송골매',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영원한 '회장님'이라는 닉네임으로 그는 펜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게 됐다. 그는 고별사에서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증평초등학교때 조중협 선생님을 만나 야구를 시작하게 됐고, 오늘 김인식 감독님과 마지막 경기를 했다. 그 동안 운이 좋았다.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선수, 코치들을 만나 21년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리고 선수로서는 마지막이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조중협 선생님은 현 충북야구협회 고문으로 송진우를 야구에 입문시킬 당시 충북 지역 6개 초등학교에 야구부를 창단 한 분이다. 나의 초등학교 은사님이시기도 하다. ㅋㅋ)

 한화엔 또 한명의 전설이 있다. 장.종.훈


 장종훈 이글스 야구코치. 그 또한 야구명문 세광고 출신으로 1987년 빙그레 이글스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한화 이글스서 명예롭게 은퇴한 한국 프로야구 타자의 전설이다. 장종훈은 소속 프로팀에 스카우된 선수가 아니다. 청주 세광고를 졸업하고 프로팀도 대학팀도 오라는 곳이 없어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 배성서 감독에게 눈물로 하소연했다.
 “선생님,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배 감독은 연봉 600만 원, 한달 월급 50만 원의 '주전자 당번'으로 그를 채용했다. 주전자는 주전들이 훈련할 때 물을 떠다주고 볼을 날라준다. 그는 남들이 쉴때 몸을 만들었고, 남들이 잘 때 배트를 휘둘렀다. 거기서부터 연습생 신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듬해 퇴출대상으로 분류됐고, 배성서 감독과 이재환 수석코치등이 구단 고위층에게 사정하여 팀에 잔류한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한시즌에 30홈런을 넘긴 선수도 3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던 92년에 마의 벽으로 생각되던 40홈런을 프로야구 최초로 넘겼다. 91년과 92년에 연속으로 최우수선수(MVP), 골든글러브도 5차례. 최다안타 1회. 홈런왕 3회. 타점왕 3회. 득점왕 2회, 장타율 4회. 출루왕 1회 등 무수한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한 장종훈은 개인통산 최다인 1949경기에 출장해서 6290타수 1771안타로 통산 타율 0.282, 340홈런, 1145타점을 기록했고, 홈런과 타점, 득점, 경기, 타수, 안타, 4사구에서 심지어 삼진까지 타격의 각종 기록에서 통산 1위에 올라 있는 말 그대로 '기록의 사나이'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투타의 핵이였던 장종훈과 송진우. 이제 둘은 선수로서가 아니라 그라운드의 지도자로 제2인생을 살게 된다. 이제 이들은 전설이 됐다. 송진우도 전설이고 장종훈도 전설이다. 더더구나 감격에 찬 것은 당대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타자가 '충청인'(투타 최고의 간판이 세광고서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얘기)이라는 것이다. 요즘 가뜩이나 '세종시' 문제 등으로 충청인 심경이 암울할 때 이 두 영웅의 존재감은 큰 위안이자, 큰 힘이 된다. 송진우, 장종훈 파이팅.


<속보>=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계약이 만료된 김인식(62) 감독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신임 사령탑에 한대화(49)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내정했다. 한대화는 대전 출신으로 대전고와 동국대를 졸업했고 1983년 OB를 시작으로 해태(1986년), LG(1994년), 쌍방울(1997년)을 거치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통산 15시즌 동안 1331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와 1190안타, 163홈런, 712타점을 남겼고 8차례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Posted by 나재필

추운날씨와 어려운 경제로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3일 한 상인이 거리의 가판대에서 추위와 싸우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충투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가난은 속살을 들킨 양 부끄러워 남들 모르게 땀 흘리는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부자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빈자(貧者)를 위로한다 해도 감질 나는 세상이다. 희망은 내일을 담보로 한 작위적인 화해법이다. 오늘은 빌어먹을지언정 내일이 오면 달라질 거라는 자기 위로다. 그러나 희망이란 씹으면 씹을수록 점점 더 삶에서 멀어지는 게 이치다. 아름다운 꿈일수록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법이니까.

▶대통령(MB)이 변했다. 친(親)서민, 중도실용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113년 만에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강원도 홍천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고추도 땄다. 마을사람들은 다슬기와 고랭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찰옥수수와 단호박 튀김, 식혜, 막걸리를 내놓으며 대통령을 환대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는 손녀에게 줄 한복, 무화과, 꿀타래를 사고 상인들과 설렁탕도 먹었다. 이제 재래시장은 기본 투어가 됐고, 농촌과 군부대는 민생행보의 코스가 됐다. 그런데 ‘서민과 복지’는 노무현 정권이 원조다. 입만 열면 서민, 눈만 뜨면 복지를 외친 그 때와 닮아있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서민’을 부르짖은 결과는 어땠을까. 서민을 챙겨 지지도는 올라갔지만 ‘살만 했던’ 중산층만 몰락하는 역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의 수탈로 조선의 식량난이 극에 달하자 총독부는 쌀밥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건강을 해친다고 헛소문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쌀 파동 때 밀수출범을 사형시키기까지 했다. 어머니들은 밥밑에 물에 불린 통보리와 감자를 깔고 그 위에 흰 쌀을 얹은 ‘삼층밥’을 지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6년 통일벼를 개발해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고통을 걷어냈다. MB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학창 시절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극빈체험자로 빈곤의 통증을 온몸의 DNA로 각인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서민정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부자다. 이런 ‘부자 정치인’들이 서민들을 챙긴들, 폐부 깊숙이 저며 오는 슬픔까지 알 턱이 없다.


▶가난한 1인가구가 늘고 있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 341만여 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두 평(6.6㎡)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라면과 간장 종지를 놓고 끼니를 때운다. 이들 중 절반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인데 싱글벙글 웃을 일 없는 싱글들이다. 청년 실업자, 알바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있는 '신빈곤층'만 823만 명. 1인당 빚 1679만 원, 국가채무 366조 원인 세상에 ‘서민 위로’는 특효약이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빈곤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서민을 진정으로 품을 때 비로소 열린다. MB는 “상황이 너무 딱하면 거절 못한다”며 서민행보를 하고, 참모들은 “대통령 만나는 게 로또 잡는다”는 말이 있다며 “민원인들에게 약속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뜯어말린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대선 때 공언한 ‘세종시 약속’을 20개월 넘도록 방치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민심이반이다. 세종시도 국가적 ‘민원’이기에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신뢰

충청로 2008.09.09 21:50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 핀란드인의 국민성이다. 900여 년간 스웨덴·러시아의 통치를 번갈아 받은 그들이지만 '신뢰받는 소통의 정치'로 선진국이 됐다. 어느 핀란드인은 1마르카(핀란드의 옛 화폐단위로 약 175원)를 갚기 위해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5㎞나 걸어간 일도 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빌려준 이에 대한 신용을 생각한 것이다. 그들에게 1마르카의 신용은 절체절명의 위험보다도 소중한 자산이다. 그에 비해 인도네시아의 한 사업가는 얼마 전 자신의 저서를 홍보한답시고 경비행기로 약 1억 루피(약 1000만 원) 상당의 현찰을 뿌렸다. '돈의 비'라는 이벤트였는데 쉽게 말해 '돈벼락'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 벼락부자의 저서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7월부터 유가환급제를 도입한다며 인심을 쓰고 나섰다. 이는 근로자·자영업자 1380만 명에게 매월 5000원~2만 원의 현찰을 통장에 넣어주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돈벼락'이 아니라 '촛불'을 끄기 위한 물벼락일 뿐이다. 어디 촛불민심이 그 돈 받자고 밤을 새우고 목이 쉬도록 외쳤단 말인가. 10조 4930억 원이라는 그 돈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다시 나가야할 돈이다. 언젠가 MB는 "사람은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왕에 세금을 내는데 즐겁게 내도록, 돈을 뺏겼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돈을 벌어 나라에 바쳤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세정을 펴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정부가 다른 정부로부터 맨 먼저 배우는 기술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는 기술이라고 말한 아담 스미스의 명언이 머리속에서 교차된다.


 ▶신의(信義)가 두터운 선배 한 분이 미국 LA발령이 나서 서울서 환송회를 했다. 그는 내 아이가 아플 때 소줏집에서 함께 울어준 사람이고, 내가 직장을 나왔을 때 월급을 쪼개준 사람이다. KTX를 타고 상경하는 게 호사스러운 듯 보여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선배의 '장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가 보여준 믿음을 기억하기 위하여 140㎞의 거리를 달리기로 한 것이다. 유성-세종-연기-천안-성환-평택을 거쳐 송탄까지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10시간 후 체력이 고갈돼 택배로 자전거를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전거로 80~90㎞를 내달려온 나에게 '좋은 선물'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비록 거마비를 챙겨주진 못했지만 나성(LA)의 외로운 타향생활에서 가끔은 '무모한 후배'의 무한도전을 떠올리며 힘을 내리라 믿는다. 신뢰를 주면 '날 따르라'고 말하지 않아도 따르는 법이다.


 ▶부시 대통령의 월급은 3200만 원이다. 영국 총리는 2700만 원, 일본 총리는 3000만 원이고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38만 원, 쿠바 카스트로 전 의장은 2만 5000원의 월급이 책정되어 있다. MB는 대선후보 등록 당시 재산이 353억 원이었다. 서울 서초동에 142억, 101억짜리 빌딩 두 채를 갖고 있고 양재동에 85억 짜리 1채, 논현동에 31억짜리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당시 MB는 대통령 당락에 관계없이 300억 원의 재산을 모두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은 유효한 것인가.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신뢰부족 탓도 있을게다. MB는 '거짓말 아킬레스건' 때문에 종로에서 금배지를 반납한 일도 있고 위장전입 홍역을 치른 적도 있다. 지금 MB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믿고 찍어준 민심 앞에 서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