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4.15 꺼억~막걸리의 계절, 봄이 왔네 (3)
  2. 2009.11.25 개 사료 값만도 못한 쌀값
  3. 2009.06.20 비를 너무 사랑한 술 (5)
  4. 2008.09.24 소풍
▶아버지 주름 틈에서 막걸리가 뽕짝이 되어 흐른다. 어머니 작은 손에 박힌 옹이에선 구수한 신파명조의 술이 발효된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인생의 삼합(三合)’은 가난과 노동과 눈물이었다. 이 때 슬픈 넋두리를 위로하는 시(詩)가 막걸리였고, 젓가락 두드리며 희망을 노래하던 흥타령이 막걸리였다. 코흘리개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한 모금 한 모금 도둑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여린 취기(醉氣)다. 시치미 뚝 떼고 술 주전자를 내밀면 아버지는 벌건 볼과 풀린 눈을 모른 체 하며 가벼워진 주전자를 기꺼이 받았다. 술의 양은 줄었지만, 아이가 술의 발효만큼 쑥쑥 자라고 있다는 ‘귀여운 일탈’로 본 것이다. 질긴 풀과 억센 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에서 향긋한 이야기로 익어가던 우리네 술 ‘막걸리’가 요즘 뜨고 있다.


▶1970년대 대물림된 궁핍과 빈곤에 익숙해진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동네에 초록색 새마을운동 깃발이 내걸렸다. 진입로를 새로 닦고, 초가집을 헐고 우물을 새로 팠다. 집집마다 형광등이 들어와 광명이 비췄다. 불 때던 아궁이는 전기밥솥으로 바뀌고, 부채 대신 선풍기가 여름햇살을 막았다. 바보상자 TV도 노동의 피로를 달래주는 ‘신기한 광대’였다. 이런 새마을운동의 중심에는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통일벼’가 있었다. 소출(所出)이 늘어 곳간이 넘쳤고 쌀 막걸리가 등장했다. 1977년 12월 8일 ‘1호 쌀 막걸리’가 세상에 나오자 대폿집에 술꾼들이 몰려 단시간에 술독이 동났다. 당시 쌀 막걸리의 등장은 의료보험 실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함께 10대뉴스에 포함될 만큼 화제였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옥수수나 밀가루로만 만들었다. 정부는 1년 묵은 고미(古米)로는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하고, 2년 묵은 고고미(古古米)나 3년 묵은 고고고미로만 술을 빚게 했다. 그러나 요즘 막걸리의 90% 이상은 국산 쌀이 아닌 수입쌀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덕지덕지 붙는 세금은 ‘막걸리’에게 더욱 야박하다. 맥주 500㎖ 1병의 세금을 뺀 매출 단가는 478원, 소주 360㎖ 1병은 394원인데 막걸리 750㎖ 1병은 693원이다. 오히려 막걸리가 더 비싸다. 전국 750곳의 양조장에서 빚는 2000종의 막걸리는 숱한 규제와 ‘싸구려 농탁(農濁)’이라는 설움 속에서 오늘도 술등을 적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오곡막걸리(충북 단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배다리 쌀막걸리(경기 고양), 76년 전통의 연꽃 생막걸리(충남 당진), 등록문화재인 덕산 막걸리(충북 진천)…. 세월이 빚은 명주(銘酒)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꽃 피는 계절이면 술도 익는다. 대청마루서 햇살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이는 것도,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짠지 하나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는 것도, 앞마당 무화과나무 앞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도 모두가 막걸리가 있어 가능하다. 이런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로 마셔야 제 맛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 편한 것도 없다. 사람도 막걸리처럼 조금은 찌그러지고 빈구석이 있어야 그윽하다. 사람이 막걸리처럼 익는다. 봄처럼 익는다. ‘골 때리는’ 술이라며 천대받던 막걸리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좋아진 제조법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냄새 나고, 사는 맛 나는 세상을 갈구하는 모두의 갈증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비 오는 처마 밑에서 술마당을 열고, 젓가락 두드리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봄이라서 가능하다. 꺼억~.

Posted by 나재필
쌀값하락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쌀값보장 대책마련 기자회견이 3일 충남도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이 쌀값하락에 따라 개 사료값에 비교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됐다. 이 볍씨는 1만 5000년 전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로 공인받았다. 때문에 기원전 2000년께 중국에서 벼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도 바뀌었다. 한민족이 벼농사를 지은 지 3000년은 너끈히 된다는 얘기다. 1975년 이전까진 쌀이 귀해 죽을 쑤어 먹거나 고구마·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일본·대만 벼를 교배해 만든 통일벼는 그야말로 ‘기적의 볍씨’였다. 보통 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였지만 통일벼는 120~130개나 됐다. 석 섬 나던 논에서 닷 섬이 났다. 생산량이 40%나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쌀 자급 달성(76년), 쌀 막걸리 탄생(77년), 대북 쌀 지원(77년)이 가능했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너로 인해 천 가지 근심을 잊는다.”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한을 풀어주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막걸리로 시름을 달랬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 임금이 된 철종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요즘엔 ‘대통령의 술’이 됐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고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 막걸리를 기울이며 '농주(農酒) 외교'를 했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요, 친구를 만드는 화합주다.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빚지 못했다. 때문에 세무서의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는 일이 잦았다. ‘술조사 떴다’는 소문이 돌면 술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줄행랑 치거나, 독을 깨서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용케도 고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그윽했고, 누룩의 ‘발정’이 끊이질 않았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름이 녹았다. 단내 나는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주막에 앉아 다들 거나하게 몇 순배씩 하다보면 노을도 익고 사람도 익었다. 배고픈 이는 술 찌게미를 먹어 몸도 취하고 맘도 취하게 했다. 논두렁 새참 때는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맛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된 쌀의 취선(醉仙)이다.


 ▶가뭄도 없었고 태풍도 없었다. 들녘은 풍년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추수의 기쁨을 누릴 농부들의 가슴엔 서리가 내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년이 든 것이다. 없어서 못 먹던 귀하신 ‘쌀밥’이 불과 20여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쌀 풍년은 역설적으로 쌀값 폭락을 의미한다. 쌀값은 10년 전 14만 원 선(80㎏ 기준)에서 지금은 12만~13만 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농약값,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농협 빚만 남는다. 하지만 ‘자식농사’ 때문에 농사를 접을 수도 없다. 농부의 발소리를 천 번을 들어야 쌀이 된다고 했다. 농부들이 야적시위를 벌이며 힘겨운 삶에 몸부림칠 때, 정치인들은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막걸리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3000세(歲)가 넘는 농부의 굳은살에 피눈물이 맺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농부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가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는가.
Posted by 나재필


그림 속 멀리 보이는 모퉁이 쪽에서 사랑하는 님이 걸어올 것 같지 않나요? 그럼, 우산을 집어 던지고 달려가세요. 빗물에 세상살이 고달픈 눈물이 가려지도록….

눈물 나게 그리운 날
나는 비가 된다.
우산이 된다.
혼자 걷다 눈물 나면 우산 접고 비를 맞고
비를 맞다 눈물 나면 마음 접고 비를 맞고

눈물 나게 보고픈 날
나는 새가 된다.
창가로 간다.
노래보다 살가우면 날개 접고 노래하고
노래하다 보고프면 창문 열고 살 부비고

눈물 나게 서글픈 날
나는 술이 된다.
망각이 된다.
거나하게 술 취하면 마음으로 다스리고
다스리다 못 견디면 망각으로 앓아야지

아, 눈물 나는 날
난 비가 되고 술이 되고 우산이 된다.



 雨~~悲(비)...............

 비가 오는 날엔 술 생각이 난다. 가끔 그런 것이 아니라 무시로 그렇다. 때문에 우기(雨期) 때면 술 먹는 날이 잦아진다. 비가 술이고 술이 비다. 비가 안주고, 빗물이 술잔이다. 왜 비 오는 날 술이 당기는 걸까. 촉촉이 젖은 비가 축축하게 마음을 적시기 때문일 것이다. 술집 중에서도 멋들어진 레스토랑이나 호프집보다는 비가 보이는, 빗소리가 들리는 선술집이 좋다. 바깥 풍경을 보며 비에 젖는 상념들을 볼 수 있어 좋다. 우산을 쓴 나무들과 우비를 입은 처마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고즈넉한 세상 밖의 풍경과 넉넉한 세상 속의 풍경들이 오버랩 되면서 술잔은 달디 단 풍류가 된다. 실연당한 청춘과 시련의 중년들이 모여 한 순배 두 순배 인생의 고단함을 마신다. 술엔 지짐이가 제격인데 그 중에서도 파전이 으뜸이다. 지글지글 볶아대고 삶아대는 세상처럼, 지짐이는 모든 아픔들을 지지고 볶아 ‘아름다운 보름달’이 된다. 요즘 들어선 두부에 김치를 말아먹는 것도 제법 웰빙스럽게 느껴진다.

 요즘엔 비가 오면 무조건 우산을 뒤집어쓰지만 옛날엔 그냥 비를 맞았다. 비를 맞으면 처음과 끝이 달랐다. 처음엔 추비할 정도로 폼도 안나지만 조금 맞다보면 체온과 섞여 안온했다. 사람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터벅터벅 걸으며 우울한 심사를 털었다. 머리에 오염물질을 뒤집어써야 하는 요즘의 비와는 색깔이 달랐다. 맞고 싶고, 젖고 싶은데 그런 비가 사라진 것이다. 이류 대폿집에서 일류 시인의 시집을 한쪽에 놓고 삼류사회의 기득권을 안주삼아 독주를 들이켜던 낭만은 이제 사라졌다. 비주류(非主流)속 주류인(酒流人)의 애환일 뿐이다.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대폿집에서 돼지고기를 썰고 있는 여자를 훔쳐보면서 빈속에 소주를 들이켜는 나를 만난다. 주독(酒毒)이 올라 음주 횟수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과 만나면 쓴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다. 물론 예전만큼 비가 올 때마다 날궂이를 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이 없으니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비스듬한 우산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둘이 쓰는 우산이 비좁아도 상대방이 젖을까봐 우산을 기울여주는 아름다운 배려, 넉넉한 희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어깨는 젖어도, 당신은 어깨는 봄볕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오늘도 비가 내린다. 막걸리에 파전 하나 먹으며 로또 얘기를 하면 금상첨화일 듯한데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그래서 빗소리를 들으며 비를 구경한다. 그런데 술이 빠지니 영 기분이 안난다. 역시 비엔 술, 술엔 비다.

Posted by 나재필

소풍

충청로 2008.09.24 21:46
 ▶시인 천상병은 밥보다 막걸리를 더 사랑했다. 그는 '걸레스님' 중광, '춘천 거지'  이외수와 함께 3대 기인(奇人)에 속한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극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기인에서 '폐인'으로 타이틀을 바꿔단다. 동백림 사건은 베를린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에 구경삼아 소풍을 갔는데 '간첩'으로 몰린 희대의 사건이다. 이들에겐 '반공법'이 적용돼 사형, 무기징역 등이 처해졌다. 그러나 그는 한 잔의 커피와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비가 남았다며 행복해했다. 친구에게 막걸리 값으로 100원과 500원을 '동냥'하면서도 가난을 즐겼다. 그는 죽는 날까지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며 자신의 시 '歸天'(귀천)처럼 세상을 사랑했다. 그의 인생은 소풍이었다. 그에게 일상은 막걸리 한 잔이었고, 인생은 잠깐 놀러왔다 떠나는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화가 고흐는 사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예술성에 천착했던 그의 작품은 생전에 딱 한 편만 팔렸는데 그것도 친동생이 몰래 산 것이다. 매일 독주로 소일하던 그는 단골 술집에서 고갱을 만났고, 화가 공동체를 꿈꿨지만 결국 흐지부지 됐다. 고흐와 고갱은 절교했고 슬픔에 빠진 고흐는 귀를 잘라버린다. 결국 고흐는 정신병동을 오가다 자신이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란 작품처럼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는 자살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장례식을 거부당했고 수레에 짐짝처럼 실려 동토(凍土)에 묻혔다. 그의 삶은 소풍이 아니라 광풍(狂風)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평균 34명이 자살한다. IMF(외환위기) 때의 19.9명보다도 2배가량 뛴 수치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수는 1만 2174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뛰어넘었다. 게다가 20대가 전체의 26%를 차지할 만큼 '꽃다운 청춘'들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단연 1위다. 이는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 풍조, 가난과 홀대, 실직과 실업, 성적지상주의 등 삶의 코너에 몰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자살의 방조자는 국가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 빈자(貧者)의 희망을 꺾는 부자 부동산정책, 가진 자가 없는 자의 것을 탐욕하는 수도권정책, 보수와 진보가 허구한 날 퉁바리 놓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끼리끼리 '꽃놀이패'로 산다.


 ▶1774년 발표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남의 약혼녀를 사랑한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괴테가 절친한 친구의 자살과 자신의 실연(失戀)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 하지만 소설이 출간된 뒤 젊은이 사이에서는 '모방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안재환의 자살후 연탄가스를 이용한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이 생겼다고 한다. 개인 빚 780조 시대. 1인당 1600만 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사는 사람들의 삶이 즐거울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풍'을 떠나기 전, 남아있는 자의 눈물을 떠올려보라.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생을 포기한다면 남은 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잘살아보자는 웰빙(Well-Being)보다 올바르게 죽는 웰다잉(Well-Dying)이 뜨는 이유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