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北風)=선거철만 되면 바람이 분다. 정가에서 부는 바람인데 때로는 돌풍으로, 때로는 폭풍으로 몰아친다. 국민들은 옷섶을 닫지만 바람은 미친 듯이 파고든다. 그래서 바람난 세상의 민심은 머흘다. 우파는 10년간 북풍을 내세워 바람을 탔고, 좌파는 북한을 넘나들며 '정상외교' 바람몰이를 했다. 대한민국이 '햇볕'과 '바람'에 정신을 놓는 사이,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다. 평화적 지원 명목으로 쌀을 주었지만 굶주린 인민에게 ‘밥’은 돌아가지 않았다. 되레 쌀을 팔아 무기로 바꿨다. 이러한데도 역대 정치세력은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을 끌어들인다.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통일’이라는 햇볕장사, ‘내일 모레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안보장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남북문제를 이용한 결과 국민은 북풍이 지겹다. 이 ‘광기의 정치’를 어쩔 건가.

▶노풍(盧風)=“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화장해서 작은 비석하나 세워라. 퇴임 후 농촌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벌써 1년이 흘렀다. 글피면 노풍(盧風)으로 대통령이 되어 노풍(怒風)으로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다. 정치권의 일대 변혁으로 평가되는 '노풍(盧風)'은 2002년에 불었다. 이 바람으로 노무현 후보는 대역전드라마를 쓰며 '돌풍'을 일으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반전시킨 ‘노무현 학습효과’는 그래서 위력적이고 무겁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야당과 진보세력은 노 전대통령에 대한 애도기를 틈타 '노풍'이 불기를 기대하고 있다.


▶외풍(外風)=선덕여왕은 비담의 난(亂) 와중에 승하했다. 오늘날의 총리에 해당하는 상대등 비담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며 난을 일으킨 것은 그만큼 신라의 정세가 위중했다는 뜻이다. 귀족사회는 분열돼 있었고 고구려·백제의 협공으로 나라는 피폐했다. 당시 삼국은 동족으로서의 일체감을 갖기는커녕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상대방의 왕을 죽이는 전쟁에 광분했다. 이랬던 신라가 삼한을 하나로 통일해 최후 승자가 된 것은 외풍(外風) 덕이었다.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것이다. 통일신라의 출현은 고조선 멸망 이래 계속된 800여년의 전쟁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외세에 의탁한 통일이라는 불구(不具)성을 안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무리 승자라 하더라도 외세에 의탁한 통일은 진정성이 없다. 진정한 승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세풍(世風)=2002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공약 이후 ‘한나라 두 편’이 된 지 벌써 8년이다. 민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저질러 놓은 일이다. 전황(戰況)은 서로 밀고 밀리며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어쩌다가 세종시가 양자택일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가. 두 진영 모두 세종시 문제에 관해 불편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풍과 노풍, 세풍(세종시風)이 6·2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풍은 보수층의 결집을, 노풍은 진보층의 단결을 추동하는 맞바람이다. 그러나 바람을 기대하는 정치권은 조심하시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유권자에게도 고하노니 ‘선거풍’을 조심하시라. 바람을 믿다간 바람 맞기 십상이다.

Posted by 나재필
쌀값하락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쌀값보장 대책마련 기자회견이 3일 충남도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이 쌀값하락에 따라 개 사료값에 비교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됐다. 이 볍씨는 1만 5000년 전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로 공인받았다. 때문에 기원전 2000년께 중국에서 벼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도 바뀌었다. 한민족이 벼농사를 지은 지 3000년은 너끈히 된다는 얘기다. 1975년 이전까진 쌀이 귀해 죽을 쑤어 먹거나 고구마·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일본·대만 벼를 교배해 만든 통일벼는 그야말로 ‘기적의 볍씨’였다. 보통 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였지만 통일벼는 120~130개나 됐다. 석 섬 나던 논에서 닷 섬이 났다. 생산량이 40%나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쌀 자급 달성(76년), 쌀 막걸리 탄생(77년), 대북 쌀 지원(77년)이 가능했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너로 인해 천 가지 근심을 잊는다.”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한을 풀어주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막걸리로 시름을 달랬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 임금이 된 철종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요즘엔 ‘대통령의 술’이 됐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고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 막걸리를 기울이며 '농주(農酒) 외교'를 했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요, 친구를 만드는 화합주다.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빚지 못했다. 때문에 세무서의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는 일이 잦았다. ‘술조사 떴다’는 소문이 돌면 술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줄행랑 치거나, 독을 깨서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용케도 고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그윽했고, 누룩의 ‘발정’이 끊이질 않았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름이 녹았다. 단내 나는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주막에 앉아 다들 거나하게 몇 순배씩 하다보면 노을도 익고 사람도 익었다. 배고픈 이는 술 찌게미를 먹어 몸도 취하고 맘도 취하게 했다. 논두렁 새참 때는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맛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된 쌀의 취선(醉仙)이다.


 ▶가뭄도 없었고 태풍도 없었다. 들녘은 풍년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추수의 기쁨을 누릴 농부들의 가슴엔 서리가 내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년이 든 것이다. 없어서 못 먹던 귀하신 ‘쌀밥’이 불과 20여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쌀 풍년은 역설적으로 쌀값 폭락을 의미한다. 쌀값은 10년 전 14만 원 선(80㎏ 기준)에서 지금은 12만~13만 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농약값,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농협 빚만 남는다. 하지만 ‘자식농사’ 때문에 농사를 접을 수도 없다. 농부의 발소리를 천 번을 들어야 쌀이 된다고 했다. 농부들이 야적시위를 벌이며 힘겨운 삶에 몸부림칠 때, 정치인들은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막걸리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3000세(歲)가 넘는 농부의 굳은살에 피눈물이 맺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농부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가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는가.
Posted by 나재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1일 대전 시내 서점가에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사진=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학생들은 '시대의 지식인'으로 불린 리영희 교수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는 하나같이 불온서적으로 분류돼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는 DJ와 함께 80년 광주민주항쟁의 배후이자 '빨갱이'로 몰렸다. 이로 인해 다섯 차례 옥살이를 했고, 언론·대학에서 네 차례 추방당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통역 장교였던 리영희는 진주 시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따로 만나기로 약속한 기생이 보이지 않았다. 스물두 살의 혈기 넘치던 중위는 지프를 몰고 기생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리 중위는 언성을 높이며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나 기생은 굴하지 않고 "젊은 장교님은 나중에 큰 분이 되겠지만 사람을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닙니다”며 되레 훈계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크기, 도덕적인 크기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펜대 놀리는 인간'들이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반인간적인 행동에 양심의 깃발을 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노동자와 민주를 위해서 '진보'를 택했다.

 ▶소설가 황석영이 '변절'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지난 1989년 북한에 3년간 체류했다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4년 11개월간 옥살이를 했을 만큼 좌파 성향의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얼마 전 MB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며 "광주사태 같은 사건은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영국이나 프랑스도 있었고, 때가 되면 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MB를 '부패연대세력'이라 부르며, 시민단체들과 비상시국선언까지 했던 사람이다. 이에 대해 진중권 교수는 '기억력이 2초인 금붕어'라며 비웃었다. 또 한 명의 '좌파 인물' 김지하도 산문집 '촛불, 횃불, 숯불'을 내면서 운동권이 순진한 청소년들의 촛불을 '제 고기 구워먹는 숯불'로 이용했다고 혹평했다.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황석영과 김지하. 그들의 '변절'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군사전문가 지만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보며 "무대 뒤로 사라졌던 빨갱이들이 줄줄이 나와서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까불어대는 모습이 참으로 꼴불견”이라고 했다. “파렴치한 죄를 짓고 그 돌파구로 자살을 택한 사람이 왜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운명을 다한 노사모들이 시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며 단말마적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못 봐주겠다”고 했다. 여기에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비리를 저지른 노 전 대통령을 언론이 성자로 만들며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며 대한민국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이런 때에 노사모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느냐며 '반사모'를 선언했다. 이들의 막말은 그 잘난 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냥 ‘막말’일 뿐이다.


 ▶98년 충북 증평에서 취재차 리영희 교수를 만났다. 그의 자동차를 몰고 세미나장과 호텔 등을 안내하며 1박2일을 보냈다. 그의 말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어눌했지만 좌(左)와 우(右)로 날며 다문박식했다. 한때 '빨갱이'로 몰릴 만큼 진보의 편에 있었지만 그의 자유로운 생각들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상생의 목소리였다. 요즘 내편, 네 편을 나누는 나라꼴을 보노라면 보수도 죽고, 진보도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 진보타령에 사람이 죽고, 대한민국이 병들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두 패로 나뉜 대한민국의 보수·진보여, 이념논쟁의 굿판을 걷자. 퇴보하는 진보, 낡아빠진 보수. 서로 똑똑한 척 하지만 둘 다 아둔하다는 것을 각성하길 바란다.
Posted by 나재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10141번지에 한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이들은 여느 이웃과 똑같이 마켓에서 장을 보고, 추리닝 차림으로 산책을 한다. 때로는 닭요리를 싸가지고 이웃집에 ‘마실’을 가기도 한다. 이들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부부다. 퇴임 후 고향 텍사스에 정착한 뒤 미국 시민으로써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는 인기나 여론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아침마다 자신의 과거 정책을 비판하는 신문을 읽으면서도 ‘안보 보고서를 읽는 것보다 낫다’며 너털웃음을 친다. 재임 중 ‘조지고 부시는’ 전쟁광 대통령이라며 욕을 먹었지만 백악관 특권으로 국민의 세금을 기만하거나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클린턴은 강연으로 1만 달러를 벌어 세금으로 3400달러를 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의 정책 때문에 비판은 받지만 본인과 측근들의 비리로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다. 재임기간에는 청빈하게 일하고 퇴임 후에는 강연과 저술을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번다.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 토니 스노가 2007년 사표를 내며 ‘자신의 연봉만으론 세 자녀를 부양하기 어려웠다’고 호소할 만큼 청렴하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대통령과 측근들은 퇴임 후 항상 스캔들에 휘말린다. 전두환·노태우 씨나, 14년 만에 청와대 뒤안길에서 돌아와 검(檢)의 서슬 앞에 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우리가 낳은 대통령들이다. 그들은 ‘검은 손’이었다. 만약 그들이 정직한 ‘빈손’이었다면 역사의 뒤안길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뇌물을 받은 관리는 중죄로 다스렸다. 수뢰액수가 1관(貫·엽전 1000문)이면 곤장 70대, 80관 이상이면 교수형에 처했다. 한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벼슬에서 배제됐고, 자손들의 벼슬길까지 막아 집안이 거덜났다. 성종 25년 하양현감 김 지는 백성들로부터 면포 66필과 종이 1150권을 걷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성종은 ‘이를 용서하면 백성이 해를 입어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형을 허락했다. 성종 때 탄핵된 고위층만 2702명에 달하고, 한명회는 혼자서 107번의 탄핵을 당했다. 박정희 정권의 쇄신운동,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운동, 노태우 정권의 새질서운동, 김영삼 정권의 윗물맑기운동, 김대중 정부의 제2건국운동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거였지만 본인들이 부패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겐 ‘납세의 의무’를 강요할 정도로 그들은 뻔뻔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썼다. 언론의 감시를 원망하는 글이다. ‘집이 감옥’ 같다며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음을 한탄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다고도 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과 산을 바라볼 자유를 빼앗은 것은 우리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지 못한’ 본인의 탓으로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2008년 한국의 부패지수는 5.6으로 180개 나라 중 40위였다. 부패지수 ‘5’는 썩는 냄새가 나는 수치다. ‘뇌물 스캔들’은 5년이란 정권교체 주기와 맞물려 거듭되는 병이다. 언제쯤 대한민국 국민은 털어도 먼지나지 않는 ‘착한 대통령’을 만나게 될까. 언제까지 감옥 가는 대통령과 ‘감옥 같은 집’을 원망하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가. 이런 꼬락서니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지옥’ 같아서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나무 VS 로켓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일본 머리꼭대기를 지나 태평양으로 날아갔다. 98년 대포동1호는 1646㎞를 날았지만 이번 로켓은 3200㎞를 날았다. 10년 만에 사정거리를 2배 늘린 것이다. 사정거리를 늘렸다는 것은 위협의 반경도 늘어난 것이다. 이는 북한이 미국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치고 있는 것과 같다. 더불어 북한이 한국을 왕따시키고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과거 북한은 체제 위기 때마다 ‘미사일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93년과 2003년 1,2차 북핵위기 때 한 방씩 쐈고 지난해 3월에는 개성공단의 남한 당국자 11명을 추방하고는 또 한 방 쐈다. 북한이 로켓을 쏘던 시각,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처럼 청와대 녹지원서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돈 VS 로켓

 ▶북한은 이번 로켓 발사에 300억~400억 원을 썼다. 이 돈으론 쌀 100만t을 살 수 있고, 2300만 북한주민들이 2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옥수수를 살 수 있다. 햇볕정책이 시작된 이후 10년간 북한에 지원한 현물과 현금은 모두 40억~50억 달러다. 한국이 식량난을 해소하라고 열심히 퍼준 돈으로 그들은 로켓을 만들었다. 북한은 2000년 미국과 미사일 협상을 하면서 포기 대가로 매년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을 3년간 달라고 했었다. 산꼭대기까지 개간해 옥수수를 심는 그들이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줴기밥(주먹밥)에 쪽잠으로 인민들을 걱정하고 계신다”며 식량 대신 무기를 택했다. 주민들의 기근(飢饉)을 담보로 식량과 현금을 지원받고, 그 돈으로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북한의 해묵은 전략에, 대한민국은 언제나 뒷북만 치고 있다.

차떼기 VS 박스떼기

 ▶북한을 다녀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방한계선(NLL)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며 영토선을 부정했다. NLL을 지키다 수십 명이 전사하고 피를 흘렸는데도 평양 한 번 갔다 온 호사에 국가원수의 직분을 망각한 것이다. 최근엔 이권이나 인사 청탁에 개입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장담했던 그가 ‘박연차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며 패가망신 당할 입장에 있다. 검은 돈을 받으면 검은 정치하는 것 아니냐며 ‘차떼기’ 정적들을 공격해 대통령이 됐고, 도덕적 우월성을 무기로 큰소리깨나 뻥뻥 쳤던 그다. 재임 중 측근들이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도 ‘깜도 안 되는데 소설 쓴다’며 부정했지만 그의 형은 ‘박스떼기’로 돈을 날랐다. 청와대 ‘안방마님’이었던 ‘집사람’은 영부인 사상 최초로 피의자 신분이 될 수도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노무현 씨,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까지 ‘불량 대통령’의 초라한 뒷모습을 봐야 하는가.


 ▶1340년 전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짓밟고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조선은 475년 동안이나 왕권을 이어온 고려왕조를 피로써 제거하고 나라를 세웠다. 그러면서도 나라의 이름인 국호를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지금의 함흥으로 이성계가 태어난 곳)으로 압축하고, 명나라 황제에게 재가를 받아야만 했다. 언제까지 강대국 눈치를 살피며 빌붙어 살 것인가. 일본이 독도를 두고 장난을 쳐도, 북한이 미사일을 펑펑 쏴도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읍소’만 하고 있다. ‘깡패’에게 코피 나게 얻어맞고 집에다 일러바치는 꼴이다. 주민이 굶어죽는데도 무기를 만들며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은 자타공인 ‘불량국가’다. 그러나 존엄한 대통령들이 ‘검은 돈’의 역사를 뻔뻔하게 써가고 있는 대한민국 역시 불량국가이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더 불량한가"
"누가 더 도둑놈인가"

Posted by 나재필
  ▶용산 참사의 ‘성난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부하 경찰관을 죽게 만들고도 특공대 진압작전이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경찰서장. 철거민 저항을 테러로 몰아가는 국회의원. 과격시위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거품을 무는 총리와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저마다 죽은 이에 대한 얘기는 없고 죽임에 대한 정당방위만 있다.
 최초의 기자 출신 앵커로, 삼풍백화점 붕괴 특종으로 이름을 날린 ‘기자 김은혜’는 2001년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있자니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들이 떠오른다. 소리 없이 스러져간 많은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 되자”고 맹서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방송의 입’이 아닌 ‘청와대 입’으로서는 약자의 편이 아닌 듯하다. 그녀는 변호사 남편을 만나 강남에 88억 짜리 빌딩과 6억 짜리 주택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장삼이사들은 70대 판잣집 할아버지의 죽음을 90억대 부동산 부자가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끌탕을 한다. 이 나라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고난이다.


 ▶방송인 신정환이 욕지거리를 해 파문이 일었다. 그는 모 프로그램 녹화 중 개그맨 이수근에게 “녹화 처음 하나…개XX"라고 욕을 했다.

‘호통개그’ 박명수, ‘독설멘트’ 김구라, ‘빈정 개그’ 신정환 등은 막말로 재미를 본 연예인들이다. 이들은 착한 시청자가 독하게 키워낸 변종들이다. 처음엔 빈정대고 깐죽대고 시원스럽게 질러대는 꼴이 웃겼다. 그러나 진도가 너무 나갔다. 남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멘트가 도를 지나쳐 인격모독에 가깝게 변질된 것이다.

 ‘순둥이’ 유재석, 김제동, 김국진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고, 최양락 이봉원 등 중견 개그맨들이 귀환하는 것도 독한 개그에 염증이 난 까닭이다. 시청자를 우습게보지 마라. 공인의 자세를 잊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시청자 모독이다. ‘너그러운’ 시청자의 눈을 한 번은 속일 수 있지만 그런 개그는 오래가지 못한다. 독설 개그의 ‘입’엔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1988년 5공 청문회에 나온 인사들은 시종일관 ‘배째라’로 일관했다. 이에 격분한 ‘신참 의원’ 노무현의 ‘입’은 매서웠다. 무소불위의 전두환, 허삼수, 허화평, 장세동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 그들을 꼼짝못하게 했다. 청문회는 TV로 생중계 됐고 국민들은 노무현에 열광했다. 광주특위에서는 전두환 씨를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청문회 스타로 부상한 그는 13년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도 대통령 재직 땐 수많은 설화(舌禍)에 휘말렸다. 사사건건 튀는 ‘입’이 문제가 된 것이다. 1966년 9월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 의원은 ‘사카린 밀수사건’을 질의하기 위해 일찌감치 등원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석유통이 들려있었다. 그는 “국민의 모든 재산을 도적질해서 합리화시키는 내각을 규탄한다”며 준비해간 분뇨를 총리와 장관들에게 끼얹었다. 이 ‘똥바가지 사건’으로 다음날 정일권 내각은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김 의원은 제명 처분됐다. ‘냄새 나는’ 내각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었다.

▶새총과 화염병, 염산과 벽돌을 들고 시위를 벌인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도 용산참사의 ‘폭력자’다. 그러나 화염병과 새총에 맞서 특공대를 투입한 것도 지나친 ‘폭력’이다. ‘용산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며 국회서 싸움판을 벌이는 것도 ‘폭력’이다. 말에도 독이 있거늘 가난한 자를 ‘입’으로 또 한 번 죽여서야 되겠는가.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