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06 사노라면...낙향을 꿈꾸며 (4)
  2. 2009.05.27 누가 盧를 죽음으로 몰았는가?
  3. 2008.09.11 망중일기를 시작하며 (1)
  4. 2008.09.09 낙향


아래 글은 한국언론재단 '신문과 방송' 책자 10월호에 실린 저의 기고입니다. 언제나 낙향다운 낙향을 그리는 한 인간의 씁쓸한  여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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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을 꾸렸다. 8년간의 서울생활, 13년간의 편집기자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였다. 김삿갓은 하나의 로망이었고 그 방랑벽을 고스란히 떠안고 낙향을 결심한 것이다.
수 백 만장의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던 직업이었는데 달랑 A4용지 한 장으로 수속을 마쳤다.

신문기자로 산다는 것은 고행이었다. 샛길로 빠질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이직의 꿈이 항상 보푸라기처럼 일었다. 술과 일과 피로 속에서 하루하루 근심의 나이테만 켜켜이 쌓여갔다. 매년 쭉쭉 오르는 연봉에 신바람이 났지만 시시때때로 배반의 장미에 찔려 눈물 흘리는 나약한 인간 군상을 느끼며 몸 안에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다보니 직장을 7번이나 옮기는 콤플렉스가 생겼다. 성실성이 부족하다거나, 충성도가 떨어져 이직을 반복한 것은 아니다. 직장의 제1조건이 ‘돈’이 아님을 알았을 때,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정(情)’을 방관할 때 직장은 ‘머슴’에 준하는 인력시장일 뿐이었다.

연간 휴일 140일, 하루 8시간 근무, 전 직원 해외여행, 전 직원 정규직, 육아휴직 최대 9년, 60세 정년보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신의와 비전을 바랬다. 신(神)의 직장을 원한 것이 아닌데 회사는 ‘신(辛)의 직장’으로 칼날을 곧추세웠다. 가로 39.4㎝ 세로 54.5㎝의 지면에 바친 청춘은 중년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서 스러져갔다. 가끔은 빗물에 눈물을 감추며 달렸다. 낙향은 그래서 탈출구이자 비상구였다.

세상살이에 구토하고 비토하고, 아파한 기억들이 고향 땅에 내려앉았다. 봄이면 매화꽃과 살구꽃이 흐북하게 피어나던 고향. 적당한 욕망이 있고, 청승맞은 밤에게 술잔을 건넬 수 있는 고향. 고향에선 토악질도 편하고 배설도 편했다. 내가 아프고 힘들고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로울 때 달려와 술이 되고 말이 되고 어깨동무가 되어주는 고향.

그러나 낙향한지 얼마 후 난 다시 고향의 신문사를 기웃거리게 됐다. 활어시장 같은 편집국이 생각났던 것이다. 펄떡펄떡 뛰는 생선의 오르가슴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잉크냄새 폴폴 풍기며 윤전기가 돌아가는 그 전쟁터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싱싱함을 잊을 수 없어서 수 일 동안 술독에 빠져 살다가 지방 신문사에 다시 들어갔다.

신문사는 여전히 정글의 전사를 키우고 있었다. 특별하다는 오만 속에 맨주먹 정신을 가르치고, 술 냄새와 인간의 냄새가 오묘하게 합쳐진 그로테스크한 곳. 콘크리트 세상을 벗어나 맨발로 뛰고 싶었지만 다시 콘크리트였다. 늘 마음이 뻥 뚫려 있었는데 고향에서도 천공(穿孔)이 났다. 본래 있었어야 할 작은 파편이 제대로 와 박힌 듯이. 그러나 편해졌다. 분노와 미움으로 점철된 치열한 ‘삶의 체험현장’이 끝나서인지 편해졌다. 맹수의 살기가 사라져 편해졌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아니지만 여전히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 헤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열애한 신문편집을 다시 하게 돼 행복했다.

고액연봉자로 꽤 산듯한데 지금도 빚 빼면 서까래 하나 남는다.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이더라도 마음속에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산다. 달콤한 수액을 주는 대신 다른 벌레들이 꼬이는 것을 막는 벚나무, 모기가 들끓지 않도록 해주는 산초나무, 우물가에 심었다가 그 잎을 물위에 띄워 나그네의 물갈이를 막아준 버드나무,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를 위해 오리(2㎞)마다 심은 오리나무, 옛 시골집 길손에게 뒷간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는 감나무, 일을 돕기 위해 처가에 온 사위의 지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약한 덩굴로 질빵을 매줬다는데서 이름 붙은 사위질빵나무 등을 키우면서 말이다.

그리고 염원한다. 16년차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을 떠나 낙향다운 낙향을 언젠가는 하리라고. 텃밭에 고추며 오이며 토마토 등 채소들을 기르고, 사계절동안 여러가지 입성을 갈아입는 초록을 즐기며, 도시서 놀러온 지우(知友)들에게 햇살 같은 자연을 선물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가리라고. 비루먹을 상념이 폐선의 갑판처럼 삐걱대더라도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진정한 고향으로 가겠노라고.

해바라기는 태양의 궤적을 따라 동에서 서로 꽃을 움직인다. 더 놀라운 것은 암실에서도 해바라기는 빛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에서 서로 꽃을 움직인다. 빛을 쫓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습성’대로 살았다.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버릇’처럼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나를 감싸고 있었던 ‘무거운 갑옷’을 벗어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날 흔들어대도 무소의 뿔처럼 내 길을 가기 위해서.

Posted by 나재필
사진=충청투데이 이성희 김상용 기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이 옷깃을 여미고 있다. 62년 9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간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운명이다”며 14줄의 글을 벼랑 끝에 날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몇 줄의 글이 아니라 몇 톤의 질량으로 뭉쳐진 아픔이었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을 떠난 지 32년, 낙향 후 15개월 만에 파란만장한 삶을 끝낸 것이다. 그는 하야(下野)하며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습니까. 야, 기분좋다”며 웃었다. 2002년 대선서 승리했을 땐 형님 무릎을 베면서 "저, 대통령 됐습니다"라고 응석을 부렸던 그다. “시장이나 밥집, 극장에 가고 싶다. 대통령 하는 동안 그런 곳에 못 가서 답답했다”고 말했던 그다. 그는 비범했지만 평범하지 못한 '바보 노무현'으로 살았고 비애에 젖은 국민들을 뒤로 머나먼 ‘소풍’을 떠났다.


 ▶봉하마을은 '까마귀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돌아간다'던 빈촌이었다. 그의 사법고시 도전도 가난 탈출의 승부수였다. 봉화산은 그가 칡을 캐고, 진달래를 따고, 소몰이를 했던 곳이다. 더불어 토굴로 들어가 고시공부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봉화산은 자신의 꿈이 시작된 곳이자 세상과 이별한 장소가 됐다. 서거 전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내가 괜히 정치하고 대통령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07년 12월 28일로 돌아가보자)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정기록유출을 문제삼았고, 그 뒤로 불편한 사이가 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이 바보 같아서 훌륭한 지도자를 죽였다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진짜 ‘바보’일지도 모른다.


 ▶대법원은 최근 국내 최초로 존엄사(死)를 인정했다. 말기 환자가 임종단계로 들어갔을 때 생명연장의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다. ‘죽음의 병동’ 호스피스(hospice)는 라틴어 ‘손님(hospe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호스피스에 있는 사람들은 비관 속에서 하루를 소비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가도 맨발로 작두에 올라서면 살고 싶어지는 게 인생이다. 때문에 죽음은 어떠한 경우라도 억울한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well-dying)이 화두가 되는 것도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사람답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렵게 온 소풍길에 죽음마저 억울하다면 그게 무슨 삶인가,


 ▶시인 천상병은 목 놓아 외쳤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우리는 어쩌면 짧디 짧은 소풍을 온 것인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이 뒤범벅이 된 소풍길에서 ‘손님’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객(客)인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이는 맛있는 도시락을 들고, 어떤 이는 초라한 수저를 들고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상에서 한 많은 ‘소풍’을 살다갔다. 그러나 천상에선 푸른 하늘, 맑은 바람과 벗삼으며 아름다운 ‘소풍의 삶’을 사시길 옷깃 여미며 소망한다.
Posted by 나재필

 귀거래사입니다.
 낮달처럼 쓸쓸히 고향 떠나온 자의 귀향입니다. 제게 글은 잊었던 유년으로 돌아가는 스텝이고 고향을 다시 찾게 하는 기억의 첫걸음입니다. 홀로 남겨진 촌로에 대한 그리움이요, 핍진한 삶에 대한 탈출이자 잠자는 의식을 깨우는 죽비소리 입니다. 항상 삶을 염탐하고 으깨던 반동(反動)의 망향가이기도 합니다.

 글은 화장(化粧)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웠다가 다시 단장하고, 지웠다가 다시 생각하는 퇴고의 과정 말입니다. 때문에 묵혀두었던 글들이 화석(化石)이 되기 전에 죽비로 깨워 화장하려 합니다. 뒤란에 처박아 놓았던 두억시니 같은 글들을 모으고, 세상 살면서 아무렇게나 버리고 온 번민과 상처의 흔적들을 주워 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는 조급함도 망중일기(忙中日記)를 탄생시킨 배경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감출 수 없습니다. 며칠 밤 이앓이를 하면서도 막상 이 빼기는 망설여지는, 뭐 그런 느낌. 세상 끝으로 가는 고단한 여정 속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미쁘게 봐주십시오.

  망중한에 쓴다는 의미로 이름지어진 忙中日記는 시와 에세이의 접목입니다. 시집을 내기엔 역량이 모자라고 에세이로 묶기엔 지난 날 긁적거렸던 시들이 불쌍해 합친 것입니다. 시로 읽는 에세이, 에세이로 읽는 詩 정도로 봐주십시오. 

                                        2008년 9월 한가위를 앞둔 날

Posted by 나재필

낙향

충청로 2008.09.09 21:40
 

▶25일은 대통령이 바뀌는 날이다. MB가  입성하고 '민간인 MH'는 낙향한다. 노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은 지금 걸판진 축제준비로 들썩이고 있다. 동네잔치가 아니라 빅쇼 수준의 레퍼토리다. 盧는 오래전부터 그 곳에 터를 사들이고 집을 짓고 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산 495억 원이 투입돼 농촌 관광 테마마을도 조성되는데 그 규모 또한 '놀랄 盧'다. 대통령 사저와 종합복지관, 생태연못은 기본이고 여느 촌락에선 엄두도 못내는 '화려한 옵션'들로 가득하다. 마을마당엔 수양버들이 춤을 추고 붓꽃, 부처꽃이 피며 마을길은 살구·자두·느티·회화·팔배나무가 늘어선 꽃동산으로 조성된다. 사저 뒷산인 봉화산 일대는 산림경영 모델숲으로 선정돼 30억 원이 투입되며 습지보호구역 화포천에는 60억 원을 들여 생태체험장을 만든다.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 대통령의 낙향에 꽃방석을 깔고 있다.


▶노 대통령은 '노통'이라 불렸다. 탈권위주의를 표방한 까닭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PP(프레지던트 박)라 불렸고, DJ 김대중, YS 김영삼, JP 김종필로 불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닉네임 MB로 불린다. 노통은 정권 내내 부침(浮沈)과 파란(波瀾)을 겪었던 탓에 호통 치는 일이 잦았다. 조용한 카리스마가 필요했으나, 노통은 '엄청난 자기확신' 때문에 스스로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내렸다. 소통하지 않고 호통 치는 盧의 주변은 립서비스에 강한 사람들로 '人의 장막'을 이뤘다.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 낙하산 인사들이 넘쳐난다는 구설수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낙향 열차인 서울발 KTX에 동승할 현 정부 장·차관을 물색해 보니 한 자리 숫자에 불과했다. 인생무상, 정치무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아무튼 한 편의 드라마처럼 대통령이 돼, 한 편의 콘서트처럼 귀향하는 대통령의 5년간 노고에 충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누구나 낙향한다. 한 줌의 흙이 되어서라도 낙향한다. 민초들은 배고픈 일상과 신물 나는 세상의 부대낌이 싫어 낙향을 택한다. 그러나 괴나리봇짐에 '이름 석자' 초라하게 짊어지고 낙향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물며 논밭뙈기 한 평 힘겹게 일구는 민초들의 삶을 외면하며 호사 부리는 귀향은 더더구나 볼썽사납다. 다소 가난하지만, 다소 문명과는 떨어졌지만, 호젓하고 여유있는 '소박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가는 것이 낙향인게다. 아직도 많은 민초들에겐 낙향해서 일굴 한줌의 땅과 한 움큼의 씨앗조차도 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재단이나 만들고, 연구소나 차려 추종자들과 못다한 진보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뒤풀이'를 해서는 안된다. 포퓰리즘(populism)을 통한 입바른 정치, 훈수정치도 금기다. 퇴임 후 더 빛난 지미 카터(노벨평화상 수상)처럼 국가 성장동력을 위해, 공공의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리더십은 쇼맨십이 아니다. 말(言)의 정치를 끝내고 초야를 달리는 말(馬)의 동력처럼 통큰 활약을 기대해본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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