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를 보인 가운데 대전 중구 문창초 가을운동회에서 어린이들이 힘차게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거짓말 세상, 이 맑은 동심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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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거짓말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노태우 씨는 대선 때 약속한 ‘중간평가’를 하지 않았고, 김영삼(YS) 씨는 3당 통합 때 합의한 내각제개헌을 까먹었다.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던 전두환·노태우 씨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92년 김대중(DJ) 씨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약속 파기’라는 눈총을 무릅쓰고 복귀해 대통령까지 지냈다. 정몽준(MJ) 씨는 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을 한 후 하루 만에 번복해 ‘말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법과 원칙을 고수해 ‘대쪽’으로 불린 이회창 씨도 은퇴와 복귀를 반복, ‘제2의 DJ, 제2의 이인제’라는 비난을 받았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공약을 ‘밥’ 먹듯 하고 대권을 잡고선 ‘입’을 싹 닦는 파렴치한의 정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괴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최근 디지털 싱글 ‘콜미’를 발표하며 가수 전업을 선언했다.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환갑’의 나이에 아이돌 가수처럼 랩을 불렀다. 그는 “내 뒤에 선녀 12명이 있다. 2012년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 왔다. 눈빛으로 병을 고친다. 잠들기 전에 허경영을 부르면 젊어진다. 암도, 신종플루도 자신 때문에 못 들어온다. 내 아이큐는 430이다. 축지법·공중부양을 한다”고 허구한 날 허풍을 치고 있다. 자신을 아시아연방의 대통령, 돌아온 광개토대왕이라고 떠들며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의 발언도 한다. ‘허풍’ 허경영의 허무맹랑한 공약과 언동을 보며 대한민국의 ‘뻥짜’ 공약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거짓말의 강도는 확연히 다르지만 다 같은 ‘구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중원(충청)’을 장악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DJ, 노무현, 이명박(MB) 당선은 ‘캐스팅보트’라는 충청권 표심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MB는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지지율이 기대이상으로 높자 “국민들이 나를 보면서 약속을 하면 꼭 지킬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충청도는 7번 이상 ‘세종시’ 공언을 했던 MB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깜냥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고 공언했지만, 충청도를 대하는 말본새도 그렇고, 세종시를 다루는 품새도 영 마뜩찮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는 ‘여당의 배후’ 아래 총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충청인은 암울하다. 그가 총리로 내정되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했던 충청인은 이제 세종시가 ‘동네북’이 되지 않을까 개탄스럽다.


▶충청권은 세종시를 요구한 적이 없다.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고 '그들만' 재미를 보았을 뿐이다. 대통령의 공약만 믿고 따라온 500만 충청인, 고향의 상처를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원안추진을 기다리는 700만 출향인들은 참담한 심경을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박’보다 ‘호박’에 더 끌린다. 왜냐하면 달콤하지 않아도 솔직담백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건설은 국익의 논란을 떠나 민심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한다. 그저 표심을 얻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던진 ‘공수표’였다면 차라리 고개 숙여 속죄하라. 그리고 ‘다시는 뻥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쓸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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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를 쓴 고려 문신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신라중심의 사관(史觀)이 고리타분하게 박혀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멸망이 수·당나라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역성을 든다. 또한 백제가 전쟁을 일삼고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다고 기록했다. 강대국의 비위를 거스를 염려가 있는 부분은 본기(本紀)에 적지 않거나 은유법으로 슬쩍 피했다. 광개토대왕이 대마도와 일본의 왜를 복속시키고 중국 요서지방으로 진출한 사실도 적지 않았다. 백제가 중국 동부지방으로 진출하고 대마도를 복속시킨 사실도 빼먹었다. 백제의 본기가 신라본기의 35%, 고구려 본기가 신라본기의 약 6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김부식은 신라의 눈으로, 승자의 눈으로 역사서를 썼다. 어찌 보면 ‘왜곡’이었다.


▶660년 7월 13일 밤. 의자왕은 사비성을 빠져나와 웅진으로 몸을 피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낙화암벽 백마강은 ‘눈물’로 출렁였다. 궁녀 3000여 명은 바위에서 ‘꽃처럼’ 떨어졌다. 끝내 포로가 된 의자왕은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됐다. 그러나 나라 잃은 왕으로서의 번민과 슬픔, 자책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병사했고 이역만리 낙양 북망산에 묻혔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을 소홀히 취급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적국’처럼 그리는가하면 김유신을 용장으로, 계백을 적장으로 은유했다. 당나라와 손잡은 문무왕은 통일을 완성한 ‘우리 편’으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난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은 당나라 외세를 불러들여 이룩한 ‘불구의 합체’다. ‘충청·호남대통령’ 의자왕의 멸절(滅絶)과, 황산벌에서 계백이 대패했을 때 역사는 박수를 쳤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그는 빈털터리 정치 낭인에서 대통령까지 지내며 굴곡 많은 생을 살았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인동초(忍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지역주의 타파에 헌신했다. DJ는 “훌륭한 대통령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다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DJ의 정치역정은 승자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을 지킨 의로운 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패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역사는 절대다수 백성을 대변하기 보다는 1% 특권층 위주로 기록됐다. 지금 우리가 DJ를 기억하며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빛고을’에 대한 ‘빚’ 때문이다. 폭도로 몰고, 폭력을 행사한 유혈의 책임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고, 승자에 의해 변질됐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의 기록이다. 정부의 눈엔 여전히 ‘신라’가 아군처럼 보일지 모른다. 전라도, 경상도가 ‘화개장터’서 손을 잡지만 아직도 ‘친구’ 같아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이 ‘중도론’을 내세우며 서민의 손을 잡지만 어쩐지 ‘친근’해 보이진 않는다. 어설픈 절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숙제로 남긴 화해와 통합. 입만 살아서 친한 척 하는 이 시대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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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분평네거리에서 한 관계자가 굵은 빗줄기속에 오송 유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사진 위는 오송생명과학단지 전경. 사진=충청투데이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첨단의료복합단지 입지가 충북 오송으로 결정됐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그들은 10년간 황금알 의료메카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냥 얻어진 게 아닙니다. 문제는 정부의 국책사업 배정의 찝찝함입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세종시 건설 원안 추진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두고 '장난'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첨단의료복합단지도, 첨단의료따로단지가 돼버렸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생판 거론되지도 않던 대구가 복수 선정된 것도 '정치적 입김'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세종시 건설도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고, 국제과학벨트사업도 지지부진입니다. 제 생각엔 국제과학벨트사업 입지도 빠른 시일내에 결정되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내년 6.2지방선거 이전에 '당근용'으로 표와 바꾸려는 심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벨트를 줄테니 노다지 '표 벨트'를 달라고 말입니다.

 ▶클린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아닌 평범한 ‘미국 국민’으로 특사임무를 수행했다. 아내 힐러리도 막후에서 남편을 지원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클린턴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하나 값에 두 개’라는 구호를 외쳤다. 자신이 당선되면 똑똑한 변호사 아내 힐러리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빌러리(빌 클린턴+힐러리)' 패키지는 성공했고 그는 두 번의 백악관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빌러리’의 주인공은 조용한 '들러리'로 백악관시절보다 더 드라마틱한 '정치 로맨스'를 써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한 명뿐이다. 내가 한 일은 전직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인으로서, 아버지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다.” 달변인 클린턴은 짧은 소회를 밝히고 195분간의 회담내용에 대해선 노코멘트 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방북보고를 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쳤다. 자신의 ‘업적’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자중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과도하게 나서거나 ‘훈수’를 두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오바마를 ‘경험 없는 애송이’로 깔봤던 클린턴. 그가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특사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 뻐기지 않고 겸손한 ‘전직’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화해했다. 이들은 60년 정치 동지로 민주화의 산증인이지만 피 튀기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둘은 갈라섰고 20여 년간 서로를 등지고 살았다. 양 김(金)은 대통령 퇴임 후 지역감정을 악용하면서 서로를 헐뜯었다. 노회한 독설과 훈수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감을 샀고, 나라의 ‘큰 어른’이 사사건건 이래라저래라 나선다는 비판도 받았다. DJ와 YS의 화해는 어쩌면 구질구질한 현 정치를 나무라던 ‘1세대 정치인’의 퇴역이자,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성서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365번 했다고 한다. 실제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민심은 정치를 걱정한다. 정치가 민심을 걱정하지 않으니 민심이 정치를 걱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열 받는 이유다.


 ▶우리는 1등과 승자만 주목한다. 조력하고 힘을 주는 2등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2등은 주목받지 못할 뿐이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나대는 1등보다 겸손한 2등이 낫다. 앨빈 토플러는 기업은 100마일, NGO는 90마일, 노조는 3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권은 3마일로 달린다고 했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3등 완행열차’ 삼류(三流)다.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지상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언제나 뒷간이었다고. 위로는 별들이 쏟아지고 아래엔 거름이 있으니 아늑한 곳이라고. 뒷간은 겸손의 장소다. 자신이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가벼움이 때론 무거움을 지배한다. 깡통을 차고 있는 사람의 겸손은 겸손이 아니다. 거짓말과 허풍이 판치는 정치판엔 깡통소리만 요란하다. 그들은 겸손하지 않고 자만에 차 있으며 경솔하다. 국책사업 몇 개를 들고 ‘당근’ 주듯 질질 끌며 정략에 악용한다. 내 편에 유리한대로 나눠주니 일종의 장사치다. 표를 얻기 위해 뻥을 치니 야바위꾼이다. 거짓말에도 자국이 남는다. 언제까지 민심을 우롱할 것인가.
Posted by 나재필
사진=충청투데이 홍성후기자

 ▶독재타령이 요란하다. 화살은 DJ(김대중)와 MB(이명박) 전·현직 대통령에게로 쏠린다. DJ는 최근 현 정권을 ‘독재’라고 비난하면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분기탱천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청와대와 여당은 “전직 국가원수가 노욕(老慾)에 가득 차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YS는 “틈만 나면 요설(饒舌)을 하는 DJ는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거들었고, 모 정치인 지지모임 회장도 “차라리 주소지를 북한으로 옮기고, 노 전대통령처럼 자살하라”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독설과 독선인가. 독재는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다. 경청하지 않는 것이다. 독재가 욕을 먹는 것은 민심이 떠들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혼자 잘났다’고 설쳐대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설치면 국민이 ‘개고생’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세계 최악의 독재자’ 3위에 올랐다. 북한은 3남 김정운(26)의 세습을 기정사실화하며 ‘100년 독재’를 선언했다. 악질 독재자 1위는 29년간 철권정치를 하며 163명을 살해한 짐바브웨의 무가베다. 다르푸르 대학살을 주도한 수단 대통령이 2위. 사이클론으로 14만 명이 숨졌는데도 태평했던 미얀마의 탄 슈웨가 4위에 뽑혔다.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49년간, 리비아 대통령과 최근 사망한 가봉대통령은 40여 년간 독재했다. 공포정치로 악명 높았던 러시아 이반4세는 성바실리 대성당이 완성되던 날,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버렸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을 만든 건축가들도 왕에 의해 손목이 잘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다시는 못만들도록 한 것이다. 독재란 이처럼 눈알이 뽑히고 손목이 잘리며 마지막 남은 가슴까지 찢어놓는다.


 ▶고구려는 동명왕을 시작으로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705년간 존립했고, 백제는 온조왕을 시작으로 의자왕까지 678년을 생존했다. 박혁거세가 시조인 신라는 박·석·김 씨가 992년간 56명의 왕위을 나눠먹었다. 박 씨가 10명, 석 씨가 8명, 김 씨가 38명이었다. 발해는 15명, 고려는 34명, 조선은 27명의 왕이 518년간 피를 섞어가며 세습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967년여 동안 191명의 왕이 한반도를 지배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에게 묻고 싶다. 세습왕조도 ‘독재’ 아니냐고. 부모 잘 만난 덕에, 못나도 왕이 되고 난봉꾼도 왕이 되는 게 세습이다. 외세를 불러들여 민족을 말살한 것이 삼국통일이 아니던가. 모든 역사는 승자에 의한, 승자를 위한,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우리는 '정통'이라는 번지르르한 허울 아래 1900년 넘게 ‘세습 독재’하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독재자 타령’을 하기 전에 제 가슴부터 열어봐야 한다. 사랑과 결혼, 돈과 출세, 권력과 편익을 위해서 누구나 ‘독재자’처럼 살고 있다. 가정도, 직장도 남의 의견은 무시하면서 비민주적인 행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는 아집과 트집, 독선과 위선 사이에서 묘하게 뛰논다. “박정희 독재를 규탄하면서도 북한 독재에는 왜 침묵하느냐”고 질타한 두레공동체 김진홍 목사의 말이 떠오른다. 57년간 핵 주권을 말살해온 미국을 두고 ‘영원한 우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지도 되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의 ‘핵타령’에 놀아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나. 우리도 ‘독재’를 벗고 ‘독자적’인 핵을 가져야하는 건 아닌지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우리의 뒤편에서 못난 우리를 비웃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