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한 이야기가 있다. 시골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에게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이 전보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래, 굶어죽어라.' 화가 난 아들은 연락을 두절한 채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아들은 아버지 전보가 성공의 전기(轉機)가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둘러 고향집을 찾았으나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유서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아들아, 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 보통 아버지들은 정(情)을 드러내지 않는다. 속은 깊은데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아들을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한 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쓴 신경숙의 어머니(74)는 문맹(文盲)이다. 딸은 가끔 제 소설을 읽어드리지만 어머니는 금세 코를 곤다. 신경숙은 ‘어머니가 졸지 않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쓰겠다’는 일념에 베스트셀러 집필을 결심했고 그것이 성공의 모태가 됐다.


▶어머니 때문에 운 적이 많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온몸이 울었다. 자식 때문에 수없이 울었을 어머니 때문에 울었다. 그동안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 때문에 울었다. 어머니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리지 못해 울었다. '천금 같은 내 새끼'로 살아온 뻔뻔함 때문에 울었다. 소싯적 호강시켜드리겠다고 가출했는데 그 날이 어머니 생신인 걸 알고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 때문에도 울게 됐다. 낡은 자동차를 몰고 헤어질 때 눈물이 난다. 얼굴에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긴 걸 발견했을 때 눈물이 난다. 앙상한 뼈마디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 화가 나시면 두 눈에 불꽃이 튀시던 강골의 아버지가 약골이 돼서 눈물이 난다. 왜 사람들은, 아니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인생이 허무한 건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늦게 깨닫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글피는 어버이날이다. 사흘 간격으로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나 웃음이 나지 않는다. 아들로 살 때는 몰랐다. 부모가 늘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놓고 걱정하거나 슬퍼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눈물이 더 많다는 것을. 그런데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다. 아버지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어머니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어머니의 희생이 자식의 성공이 되었음을. 그런데도 마음밖에는 없다. 마음밖에 없으니 괴로운 것이다. 한바탕 장난을 치고 잠이 든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사랑한다고 말은 안했지만 한없이 사랑스럽다. 아, 우리 부모가 이랬구나. 아, 우리 부모가 이렇게 짠했구나. 부모님께 표현한 적은 없지만 용기를 내본다. … … ….

 '사랑합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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