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예전엔 말이다. 여자에게서 향기만 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연약해 깃털처럼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순결해 고운 말만 쓰는 줄 알았다. 너무나 고상해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새침해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았다. 너무나 지순해 자수나 놓으며 은인자중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조신해 남자보기를 돌같이 여기는 줄 알았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안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점·점·점(···생략). 500년간 남자들의 횡포와 사매질에 짓눌려 살던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속속곳의 내숭이 사라졌다. ‘한 남자’의 총애만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의 뒤꼍에서 걸근거리지도 않는다.

▶"이천만 동포형제가 신식을 좇아 행할 사이,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침실만 지키고 있는가." 113년 전 서울 북촌의 양반부인 300명이 작성한 선언서다. 이 통문(通文)은 '남자는 눌렀고 여자는 눌렸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프랑스 극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1791년 '여성 권리선언'과 공포정치에 대항하는 평론을 냈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효종의 딸 숙정공주는 스물셋에 요절했는데 3년 연하의 남편이 '재혼을 허가해 달라'며 상소를 올렸다. 왕은 '오케이'했는데 신하들이 펄펄 뛰어 홀아비로 살다 죽었다. 숙종 때 가정주부 신태영은 남편에게 소박맞고는 예조(禮曹)에 이혼을 청구했다. 하지만 9년 소송의 결과는 귀양살이였다. 역사는 여자들에 대해 너그럽지 않았다.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만큼 콧대도 높아졌다. '하이(high)힐'의 높이만큼 자존감도 '하이(high)'다. 그러다보니 무서워졌다. 수줍음이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변기를 깨뜨렸다고 허세를 부리는 '복분자남'들이 밉상이더니 요즘엔 여자가 사회 관념에 구멍을 내고 있다. 여자가 '무서워진 것'은 남자가 '우스워진 것'이다. 손 한번 잡아도 한없이 가슴 떨리던, 미쁜 말 한마디에 까만 밤 하얗게 지새던 '고전(古典)의 여성성'이 사라졌다. 외양(外樣)은 장미 같되, 내면이 호박 같다면 그 여자는 '호박'이다. 외양은 똑똑해졌으나 내면은 툭툭해진 것이니…. 화장으로 흠은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의 결핍마저 감출 수는 없다.

▶푸른 멍처럼 파리한 새벽이 시나브로 남자를 깨우고 있다. 남자가 앞치마를 두른다.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주전자에 보리차를 넣고 물을 끓인다. 이내 설거지 품새로 돌아선다. '퐁퐁'의 양이 중요하다. 너무 적으면 뽀드득 소리가 안 나고 너무 많으면 헹구는데 오래 걸린다. 설거지는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세탁이 끝나려면 2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자투리는 빨래를 개는 시간이다. 세탁 종료 알람이 울리면 베란다 바지랑대에 세탁물을 널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탁탁 털어서 널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빨래가 건조됐을 때 주름살 펴기가 곤혹스럽다. 집안청소는 아침일과의 대미다. 이렇듯 여자가 '놀부'가 되어가는 사이 남자들은 ‘주부’가 되어가고 있다. 추석 명절은 잘 쉬셨는가? 남자들이 행여 허드렛일을 돕지 않고 배짱을 부리던가? 아니면 팔짱을 끼고 있던가? 고까워도 행짜는 부리지 마라. 요즘 남자들, 안팎으로 불쌍해지고 있잖은가.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