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하고 날선 소음, 먼지에 찌들어 숨이 턱턱 막히는 공장. 하루해가 저물었는데도 공작기계는 쌩쌩했다. 컨베이어에 실려 끝도 없이 나오는 부품들을 조립하다보면 여공(女工)들은 화장실 갈 틈조차 없었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다 다시 일하고, 잠시 잠을 자고 와서는 다시 일하고 또 일하고…. 잔업을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시골에 있는 ‘동생들 학비’를 마련할 수 있기에 쉴 수도 없었다.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뚜벅거리다가 만난 붕어빵 리어카. 입에 침이 고이지만 '붕어'를 살 수는 없었다. 그 붕어빵 값이면 동생의 주린 배를 조금은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똑바로 설 수조차 없는 2층 다락방. 온통 절뚝거리는 어둠뿐인 그곳에서 그녀들은 책을 읽으며 희망을 꿈꿨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 그 날이 올 때까지 참는 거야.' 60~70년대 '한국의 기적'은 그렇게 중졸과 고졸들이 공장에서 피땀을 흘려 일궈낸 것이었다.

▶26년 전 요맘때 나는 공작기계가 돌아가는 어느 철공소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땟국이 흐르는 작업복, 피멍 든 팔뚝, 기름때 묻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당장이라도 공구를 집어던지고 사라질 것 같은 그 퀭한 얼굴에서 나는 희망을 찾고 있었다.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어졌다. 고교과정을 마치고 대학, 군대까지 다녀오면 언제 돈을 벌 것인가. 막연하고 어리석었지만 가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줄행랑친 부산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추위와 배고픔, 그 가벼운 생존의 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귀가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루짜리 의식주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는 작자가 무슨 돈을 번다는 말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가방끈(학력)'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고졸(高卒)'은 떼야했다.

▶요즘 '학력파괴'가 뜨고 있다. 몇몇 기업과 은행들의 고졸 채용 방침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진학보다는 취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큰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그 '가방끈 파괴'가 얼마나 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벌=능력'이라는 인식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 않는 한 일시적인 이상 현상일 뿐이다. 상고(商高) 출신 대통령. 그러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목포상고), 노무현 전 대통령(부산상고), 이명박 대통령(포항 동지상고)이 세 번 연거푸 대권을 잡은 이후라 마치 설레발을 치는 모양새다. 사실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사회에 나와도 직장 잡긴 힘든 세상 아니던가. 일단 기업들의 '고졸 사랑'이 반갑기는 하지만 미덥지만은 않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종류를 아시는가? 솔직히 난 똑 부러지게 모른다. 아니, 머리가 아프다. 일반고, 특목고(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자율고(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그 옛날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었던 때를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졌다. 마이스터고는 '취업 특성화 고교.' '특성화고'는 예전 공고(工高)나 상고(商高)다. 특성화고 학생 10명 중 4명이 대학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가봤자 별 소용없고 취업이 우선이다'는 인식 때문이다. 취업난이 심각한데다 대졸자 임금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절반 밖에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해도 50% 정도가 월 1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방끈’이 먼저인지 ‘돈줄’이 먼저인지, 겪어봤는데도 도통 모르겠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