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하고 날선 소음, 먼지에 찌들어 숨이 턱턱 막히는 공장. 하루해가 저물었는데도 공작기계는 쌩쌩했다. 컨베이어에 실려 끝도 없이 나오는 부품들을 조립하다보면 여공(女工)들은 화장실 갈 틈조차 없었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다 다시 일하고, 잠시 잠을 자고 와서는 다시 일하고 또 일하고…. 잔업을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시골에 있는 ‘동생들 학비’를 마련할 수 있기에 쉴 수도 없었다.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뚜벅거리다가 만난 붕어빵 리어카. 입에 침이 고이지만 '붕어'를 살 수는 없었다. 그 붕어빵 값이면 동생의 주린 배를 조금은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똑바로 설 수조차 없는 2층 다락방. 온통 절뚝거리는 어둠뿐인 그곳에서 그녀들은 책을 읽으며 희망을 꿈꿨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 그 날이 올 때까지 참는 거야.' 60~70년대 '한국의 기적'은 그렇게 중졸과 고졸들이 공장에서 피땀을 흘려 일궈낸 것이었다.

▶26년 전 요맘때 나는 공작기계가 돌아가는 어느 철공소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땟국이 흐르는 작업복, 피멍 든 팔뚝, 기름때 묻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당장이라도 공구를 집어던지고 사라질 것 같은 그 퀭한 얼굴에서 나는 희망을 찾고 있었다.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어졌다. 고교과정을 마치고 대학, 군대까지 다녀오면 언제 돈을 벌 것인가. 막연하고 어리석었지만 가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줄행랑친 부산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추위와 배고픔, 그 가벼운 생존의 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귀가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루짜리 의식주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는 작자가 무슨 돈을 번다는 말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가방끈(학력)'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고졸(高卒)'은 떼야했다.

▶요즘 '학력파괴'가 뜨고 있다. 몇몇 기업과 은행들의 고졸 채용 방침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진학보다는 취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큰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그 '가방끈 파괴'가 얼마나 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벌=능력'이라는 인식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 않는 한 일시적인 이상 현상일 뿐이다. 상고(商高) 출신 대통령. 그러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목포상고), 노무현 전 대통령(부산상고), 이명박 대통령(포항 동지상고)이 세 번 연거푸 대권을 잡은 이후라 마치 설레발을 치는 모양새다. 사실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사회에 나와도 직장 잡긴 힘든 세상 아니던가. 일단 기업들의 '고졸 사랑'이 반갑기는 하지만 미덥지만은 않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종류를 아시는가? 솔직히 난 똑 부러지게 모른다. 아니, 머리가 아프다. 일반고, 특목고(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자율고(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그 옛날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었던 때를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졌다. 마이스터고는 '취업 특성화 고교.' '특성화고'는 예전 공고(工高)나 상고(商高)다. 특성화고 학생 10명 중 4명이 대학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가봤자 별 소용없고 취업이 우선이다'는 인식 때문이다. 취업난이 심각한데다 대졸자 임금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절반 밖에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해도 50% 정도가 월 1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방끈’이 먼저인지 ‘돈줄’이 먼저인지, 겪어봤는데도 도통 모르겠다.


Posted by 나재필


▶우리 집엔 자전거가 네 대 있다. 비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더니 이제는 '삭신'에 녹이 슬어 고물이 됐다. 한때 20㎞의 속도로 두 발의 안위를 살펴준 고마운 이동수단이었는데 퇴물이 된 것이다. 거치대가 없는 아파트에 네 대를 놓자니 관리도 어렵고 탈일도 없어 처분키로 했다. 자전거포에서는 거저 주면 모를까 값을 쳐줄 수는 없단다. 어쩔 수 없이 고물상을 찾아갔는데 그 흥정이 고깝다. 자전거 상태도 묻지 않고 대당 3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쓸 만한 한 대를 빼고 세 대를 팔 심산이었으니 (3000원 x 3=9000원) 자전거 세대 값이 고작 9000원이었다. 에계계~. 엿하고 바꿔먹어도 그 정도 값어치는 넘을 듯싶었다. 결국 흥정을 깼다. 며칠 후 3개월간 구독했던 신문지(파지)를 들고 고물상에 갔다. 근수(斤數)를 재더니 9000원을 주었다. 자전거 세대 값과 신문 3개월 치가 똑같았다. 오 마이 갓~.


▶고물상에 동행했던 아내가 고물 판값으로 수제비를 먹자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자전거 세대 값으로, 신문 파지 3개월 치 돈으로 수제비를 먹을 수는 없었다. 대신 집에서 520원짜리 안성탕면을 끓여주었다. 속으론 무척 미안했다. 아니 미안했다기보다는 쪽팔렸고 아렸다. 하지만 어쩌리. 고물을 팔아 얻은 9000원이 그렇게 커 보이는 걸. 예전 학창시절에도 공병(빈병)을 팔아 푼돈을 마련한 적이 있다. 수십 개의 공병을 모아봤자 2000원 안팎이었지만 그 '고물'은 한 끼의 라면도 되고, 열 구간의 차비도 됐다. 이처럼 '고물'은 낡거나 헌 물건을 말하지만 때론 '보물'도 된다. 고철이나 극젱이, 고장 난 밥솥, 유행 지난 헌 옷, 구식 라디오…. 물건 값도 천차만별이어서 단돈 몇 백 원짜리부터 몇 십만 원짜리까지 있다. 값의 흥정은 따로 있지 않다. 눈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낡은 저울과 주인의 눈대중이 전부다. 그러니 손에 쥐는 것은 '어림잡아' 몇 푼이다.

▶고물상이라는 이름에는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등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복지의 중층적 모순들이 오롯하게 투영돼 있다. 버려진 도시빈민, 버림받은 농촌 실업자가 넝마주이를 시발로 우리나라 재활용산업의 문을 열었다. 고물은 버려지는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절제와 검약의 반듯한 정신이기도 하다. 간식으로 머루랑 다래랑 먹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으로 주식을 삼자면 배가 고파 살수 없다. 부자에게 고물은 퇴박맞은 물건이지만 빈자(貧者)에게는 검박한 보물이다.

▶국감이 진행 중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미료(未了) 안건은 6000건이 넘는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은 1만2312건으로 역대 최다이며 17대 국회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러나 이 중 가결된 안건은 15%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공중에 뜬 상태다. 의원 개개인의 입법 구상을 혼잣말 주절대듯 쏟아놓은 안건이 '고물'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고물은 쓸모없을 때 버려진다. 국회가 본연의 구실을 잊고 365일 딴눈을 판다면 고물과 무엇이 다르리. 단풍의 미덕을 생각해보라. 단풍은 제 몸을 바람에 태워 고적한 즐거움을 안긴다. 내년에 더 나은 빛깔을 보여주기 위해 단풍은 스스로 잎을 떨어뜨려 퇴비가 된다.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자기희생이다. 우리가 고물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배고파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배부르게'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예전엔, 예전엔 말이다. 여자에게서 향기만 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연약해 깃털처럼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순결해 고운 말만 쓰는 줄 알았다. 너무나 고상해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새침해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았다. 너무나 지순해 자수나 놓으며 은인자중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조신해 남자보기를 돌같이 여기는 줄 알았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안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점·점·점(···생략). 500년간 남자들의 횡포와 사매질에 짓눌려 살던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속속곳의 내숭이 사라졌다. ‘한 남자’의 총애만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의 뒤꼍에서 걸근거리지도 않는다.

▶"이천만 동포형제가 신식을 좇아 행할 사이,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침실만 지키고 있는가." 113년 전 서울 북촌의 양반부인 300명이 작성한 선언서다. 이 통문(通文)은 '남자는 눌렀고 여자는 눌렸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프랑스 극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1791년 '여성 권리선언'과 공포정치에 대항하는 평론을 냈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효종의 딸 숙정공주는 스물셋에 요절했는데 3년 연하의 남편이 '재혼을 허가해 달라'며 상소를 올렸다. 왕은 '오케이'했는데 신하들이 펄펄 뛰어 홀아비로 살다 죽었다. 숙종 때 가정주부 신태영은 남편에게 소박맞고는 예조(禮曹)에 이혼을 청구했다. 하지만 9년 소송의 결과는 귀양살이였다. 역사는 여자들에 대해 너그럽지 않았다.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만큼 콧대도 높아졌다. '하이(high)힐'의 높이만큼 자존감도 '하이(high)'다. 그러다보니 무서워졌다. 수줍음이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변기를 깨뜨렸다고 허세를 부리는 '복분자남'들이 밉상이더니 요즘엔 여자가 사회 관념에 구멍을 내고 있다. 여자가 '무서워진 것'은 남자가 '우스워진 것'이다. 손 한번 잡아도 한없이 가슴 떨리던, 미쁜 말 한마디에 까만 밤 하얗게 지새던 '고전(古典)의 여성성'이 사라졌다. 외양(外樣)은 장미 같되, 내면이 호박 같다면 그 여자는 '호박'이다. 외양은 똑똑해졌으나 내면은 툭툭해진 것이니…. 화장으로 흠은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의 결핍마저 감출 수는 없다.

▶푸른 멍처럼 파리한 새벽이 시나브로 남자를 깨우고 있다. 남자가 앞치마를 두른다.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주전자에 보리차를 넣고 물을 끓인다. 이내 설거지 품새로 돌아선다. '퐁퐁'의 양이 중요하다. 너무 적으면 뽀드득 소리가 안 나고 너무 많으면 헹구는데 오래 걸린다. 설거지는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세탁이 끝나려면 2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자투리는 빨래를 개는 시간이다. 세탁 종료 알람이 울리면 베란다 바지랑대에 세탁물을 널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탁탁 털어서 널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빨래가 건조됐을 때 주름살 펴기가 곤혹스럽다. 집안청소는 아침일과의 대미다. 이렇듯 여자가 '놀부'가 되어가는 사이 남자들은 ‘주부’가 되어가고 있다. 추석 명절은 잘 쉬셨는가? 남자들이 행여 허드렛일을 돕지 않고 배짱을 부리던가? 아니면 팔짱을 끼고 있던가? 고까워도 행짜는 부리지 마라. 요즘 남자들, 안팎으로 불쌍해지고 있잖은가.


Posted by 나재필
▶한때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한 이야기가 있다. 시골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에게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이 전보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래, 굶어죽어라.' 화가 난 아들은 연락을 두절한 채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아들은 아버지 전보가 성공의 전기(轉機)가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둘러 고향집을 찾았으나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유서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아들아, 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 보통 아버지들은 정(情)을 드러내지 않는다. 속은 깊은데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아들을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한 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쓴 신경숙의 어머니(74)는 문맹(文盲)이다. 딸은 가끔 제 소설을 읽어드리지만 어머니는 금세 코를 곤다. 신경숙은 ‘어머니가 졸지 않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쓰겠다’는 일념에 베스트셀러 집필을 결심했고 그것이 성공의 모태가 됐다.


▶어머니 때문에 운 적이 많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온몸이 울었다. 자식 때문에 수없이 울었을 어머니 때문에 울었다. 그동안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 때문에 울었다. 어머니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리지 못해 울었다. '천금 같은 내 새끼'로 살아온 뻔뻔함 때문에 울었다. 소싯적 호강시켜드리겠다고 가출했는데 그 날이 어머니 생신인 걸 알고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 때문에도 울게 됐다. 낡은 자동차를 몰고 헤어질 때 눈물이 난다. 얼굴에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긴 걸 발견했을 때 눈물이 난다. 앙상한 뼈마디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 화가 나시면 두 눈에 불꽃이 튀시던 강골의 아버지가 약골이 돼서 눈물이 난다. 왜 사람들은, 아니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인생이 허무한 건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늦게 깨닫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글피는 어버이날이다. 사흘 간격으로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나 웃음이 나지 않는다. 아들로 살 때는 몰랐다. 부모가 늘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놓고 걱정하거나 슬퍼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눈물이 더 많다는 것을. 그런데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다. 아버지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어머니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어머니의 희생이 자식의 성공이 되었음을. 그런데도 마음밖에는 없다. 마음밖에 없으니 괴로운 것이다. 한바탕 장난을 치고 잠이 든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사랑한다고 말은 안했지만 한없이 사랑스럽다. 아, 우리 부모가 이랬구나. 아, 우리 부모가 이렇게 짠했구나. 부모님께 표현한 적은 없지만 용기를 내본다. … … ….

 '사랑합니다.'
Posted by 나재필
27일 6.2지방선거 부재자 투표가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계룡시청에서 군인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대기하고 있다.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660년 여름.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은 북풍을 타고 금강 입구에 닿았고, 신라 김유신의 5만 군사는 지금의 대전과 옥천 사이인 탄현을 넘었다. 계백의 군사는 5000명이었다. 계백은 자신의 사병(私兵) 위주로 급조한 군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10대 1의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도 계백은 다섯 번 싸워 네 번을 이겼다. 만약 양측의 군세가 동등한 수준이었다면 김유신은 계백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나라 소정방도 계백군이 전멸한 후에야 상륙했다. 계백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백제 땅을 밟지 못할 만큼 무서워했던 것이다. 여기에 ‘처자식 살해 후 출정설’도 신라 측에서 고의로 조작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어찌됐든 계백은 패장(敗將)이지만 역사에서 충절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연산군은 130편의 시를 남긴 예술인이다. 그러나 감정기복이 심해 법도를 무시하면서 충동적으로 행동했고, 신하들의 비판에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화를 잘 냈다. 그러다보니 그의 광풍(狂風)에 참살 당하는 일이 잦았다. 이는 어린아이 때부터 애정결핍,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왕이 돼서도 생존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후 어머니의 비통한 죽음을 알게 된 후 극단적인 광기와 잔인성은 더욱 포악해졌다. 그러나 광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반란군이 왕궁을 포위했을 때 신하들은 바깥 동정을 살핀다며 모두 수챗구멍으로 달아났다. 그 누구도 연산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되레 새 왕인 중종에게 허리 굽혔다. 백성들도 울지 않았다. 세종과 정조 주위에 충신과 인재가 모여든 것은 그들이 운 좋게 시대를 잘 타고 나서가 아니라 1퍼센트 특권층이 아닌 절대다수 백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이케다(池田勇人)는 1960년부터 4년간 일본 총리를 지냈다. 그는 교토대학을 나와 지방의 세무서장을 전전하던 변두리 관료였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약점은 파벌로 꾸려가는 일본식 정당 정치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단명으로 끝날 정권의 특색을 골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요즘 일본정치사 교과서들은 하나같이 이케다 총리의 재임 시기를 ‘자민당 황금시대’로 기록했다. 정치적으로 허약한 이케다가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저자세(低姿勢) 정치' 때문이다. 그는 당내의 정적(政敵)과 경쟁자들에게 무조건 허리를 낮췄다. 야당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국민을 대할 때는 더 고개를 숙였다. 이케다는 정쟁할 시간에 국민소득 향상 정책에 힘을 쏟았다. 때문에 정권 4년 반 동안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룩해 세계 제2경제대국이 됐다. 이케다의 ‘저자세’는 결국 정풍(整風)운동이었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집회가 있은 지 2년이 지났다. 4개월 간 2398차례 집회에 100만 명(경찰 추산)이 참여했다. 이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거리시위였다. 그러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무려 1000건이 넘는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질문한다. “코미디 프로에서 아버지의 뺨을 때리라는 주문이 나왔다. 아버지도 허락했다. 당신 같으면 하겠는가? 때릴 수 있다면 당신은 좌파다. 도저히 못하겠다면 우파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 우파가 뒤섞여 노풍, 북풍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누가 우리 편인가. 바람을 일으켜 승자가 되려는 자들은 가짜다. 촛불을 이용해 바람을 일으키려는 자들은 허풍이다. 유권자여 명심하시라.
Posted by 나재필
▶북풍(北風)=선거철만 되면 바람이 분다. 정가에서 부는 바람인데 때로는 돌풍으로, 때로는 폭풍으로 몰아친다. 국민들은 옷섶을 닫지만 바람은 미친 듯이 파고든다. 그래서 바람난 세상의 민심은 머흘다. 우파는 10년간 북풍을 내세워 바람을 탔고, 좌파는 북한을 넘나들며 '정상외교' 바람몰이를 했다. 대한민국이 '햇볕'과 '바람'에 정신을 놓는 사이,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다. 평화적 지원 명목으로 쌀을 주었지만 굶주린 인민에게 ‘밥’은 돌아가지 않았다. 되레 쌀을 팔아 무기로 바꿨다. 이러한데도 역대 정치세력은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을 끌어들인다.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통일’이라는 햇볕장사, ‘내일 모레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안보장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남북문제를 이용한 결과 국민은 북풍이 지겹다. 이 ‘광기의 정치’를 어쩔 건가.

▶노풍(盧風)=“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화장해서 작은 비석하나 세워라. 퇴임 후 농촌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벌써 1년이 흘렀다. 글피면 노풍(盧風)으로 대통령이 되어 노풍(怒風)으로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다. 정치권의 일대 변혁으로 평가되는 '노풍(盧風)'은 2002년에 불었다. 이 바람으로 노무현 후보는 대역전드라마를 쓰며 '돌풍'을 일으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반전시킨 ‘노무현 학습효과’는 그래서 위력적이고 무겁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야당과 진보세력은 노 전대통령에 대한 애도기를 틈타 '노풍'이 불기를 기대하고 있다.


▶외풍(外風)=선덕여왕은 비담의 난(亂) 와중에 승하했다. 오늘날의 총리에 해당하는 상대등 비담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며 난을 일으킨 것은 그만큼 신라의 정세가 위중했다는 뜻이다. 귀족사회는 분열돼 있었고 고구려·백제의 협공으로 나라는 피폐했다. 당시 삼국은 동족으로서의 일체감을 갖기는커녕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상대방의 왕을 죽이는 전쟁에 광분했다. 이랬던 신라가 삼한을 하나로 통일해 최후 승자가 된 것은 외풍(外風) 덕이었다.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것이다. 통일신라의 출현은 고조선 멸망 이래 계속된 800여년의 전쟁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외세에 의탁한 통일이라는 불구(不具)성을 안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무리 승자라 하더라도 외세에 의탁한 통일은 진정성이 없다. 진정한 승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세풍(世風)=2002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공약 이후 ‘한나라 두 편’이 된 지 벌써 8년이다. 민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저질러 놓은 일이다. 전황(戰況)은 서로 밀고 밀리며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어쩌다가 세종시가 양자택일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가. 두 진영 모두 세종시 문제에 관해 불편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풍과 노풍, 세풍(세종시風)이 6·2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풍은 보수층의 결집을, 노풍은 진보층의 단결을 추동하는 맞바람이다. 그러나 바람을 기대하는 정치권은 조심하시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유권자에게도 고하노니 ‘선거풍’을 조심하시라. 바람을 믿다간 바람 맞기 십상이다.

Posted by 나재필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암행어사가 돼 내려온 이몽룡은 남원부사 변학도의 포학한 정치를 이렇게 풍자했다.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대에 촛물 흐를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 연산군 때 ‘정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정붕은 나라에서 보직을 내리려고 했지만 거부했다. 그러나 영의정 성희안이 청송부사로 특별히 추천하자 별 수 없이 받아들였다. 정붕이 부임하자 성희안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송은 산골이라 꿀과 잣이 유명하다고 하니 좀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정붕은 꿀과 잣을 바치는 대신 답장을 보냈다. “꿀은 백성의 벌통에 들어 있고,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일개 시골 사또가 어떻게 그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성희안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명절 때 식구나 친지, 뜻 맞는 사람끼리 월병(月餠)을 나누어 먹는다. 이 월병은 지름이 3척이나 되는 큰 것도 있으며 떡 표면에는 달 속에서 불사약을 찧는 옥토끼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불로장수를 기원한다. 그런데 요즘엔 이 월병 속에 금품을 넣어 주고받음으로써 월병하면 뇌물의 대명사가 돼있다. 사또 밥상에 오를 찬값이라는 뇌물 '치계미(雉鷄米)'부터 포졸들의 짚신값이라는 뇌물 '초혜료(草鞋料)', 형장(刑杖)칠 때 종이 몽둥이로 쳐주는 대가로 요구하는 뇌물 '지장가(紙杖價)', 청렴결백을 기른다는 뜻인 양렴미(養廉米)라는 뇌물마저 있었다. '주는 놈, 받은 놈, 고자질하는 놈' 중 가장 피해가 큰 건 '받은 놈'이다. 로비의 시작은 ‘식사나 한번’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 “나만 먹은 건 아니다”고 빼봤자 먹은 건 먹은 거다. 공짜 밥에는 언젠가 탈이 날 무서운 독이 숨어있다.


▶삼김(三金-YS, DJ, JP)은 50년간 대하정치사를 쓴 대한민국 정치의 역정이다. JP(김종필)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허망하다'는 것이고 '허심탄회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YS(김영삼)는 정치를 '세(勢)'라고 했다. 정치는 동지들과 함께 세(勢)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DJ(김대중)는 정치를 '생물(生物)'이라고 했다. DJ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정치이기 때문에 순간 순간 처세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세, 생물, 허업은 삼김의 정치철학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틀 같은 것이다. YS는 전략가고 DJ는 지략가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청렴했지만 YS, DJ의 자식들은 ‘소통령’ 흉내를 내며 ‘대통령 아버지’에게 오점을 남겼다.


▶전국 230개 기초단체장 중 비리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단체장은 41%인 94명에 이른다. 이는 민선 1기 23명, 2기 59명, 3기 78명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들 때문에 들어간 재보선 비용만 작년까지 480여억 원이다. 전남 해남군수는 1억 9000만 원, 여주군수는 공천헌금 2억 원을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통 큰’ 당진군수는 수억 원대의 별장과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 군포시장, 통영시장, 영양군수, 옥천군수도 ‘양상군자’였다. 일단 당선 가능성만 높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천장을 주면 안되는 이유다. 또한 유권자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뽑아서는 안 된다. 한 순간의 방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어찌 4년을 또 ‘눈물’ 흘릴 것인가.

Posted by 나재필
▶한여름 끝의 지독한 장마였다. 비바람은 세차고, 개울은 한껏 몸을 불렸다. 지금보다 30년 젊었던 '청춘의 어머니'는 똬리에 쌀 동이를 얹고 1m폭의 징검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었다. 이때 성난 물살이 어머니를 덮쳤다. 중심을 잃은 어머니는 푸른 필터를 끼운 것처럼 파리한 빛깔의 물속에 빠졌다. 순간 머리 위의 쌀이 백화(白花)처럼 흩어졌다. 창졸간에 '심봉사' 신세가 된 어머니는 물속을 유영하고 있는 쌀을 한줌이라도 건지려는 듯 손을 허우적댔다. 손등이 터지고 발등이 깨졌다. 이 광경을 우연히 본 동네어른이 꼬챙이를 들고 달려와 어머니를 건져 올렸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강파른 얼굴로 밥 대신 호박죽을 끓였다. 저녁을 먹을 즈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를 구해준 어른이 와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머니가 이고 있던 쌀보다 더 많은 양의 쌀이 들려 있었다.


▶다음 글은 64세 때 어머니가 쓴 일기를 몰래 베껴놓은 것이다.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 성큼성큼 딛고 가는 이 한줄기 길 위에서 우리네 삶은 가련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알찬 일들을 해야 할 텐데. 한없이 푸른 잎새처럼 너울거리고 싶다. 아지랑이 숨결 속에 새 숨이 돋아나듯 나의 생명력도 그러할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자식들의 등불이 되고프다. 단단하고 강인한 땅을 뚫고 뾰족이 솟아나고 있는 새싹들이여 푸름을 뽐내지 마라. 나에게도 내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새싹 같은 자식이 있다. 1997년 1월 1일. 35년 만에 노동을 끝냈다. 몸에 병이 들어 농사는 실패했지만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자식 때문에 울고 웃었지만 오로지 자식 때문에 살아왔다. 내 몸에는 오로지 자식 밖에 없다.”


▶영화 '친정엄마'가 국민을 울리고 있다. 영화 속 엄마는 '무식하고 시끄럽고 촌스럽고 그래도 나만 보면 웃는' 엄마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엄마'보다 짠하다. 결혼한 여자들에게 '친정엄마'는 거리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항상 의지할 수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영화 속 딸은 아빠가 숨지자 혼자 살 엄마를 걱정해 ‘서울 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그때 엄마는 “너랑 같이 살면 네가 힘들 때 갈 데가 없잖아. 엄마는 여기 있을 테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라고 한다. 500원어치의 콩나물을 사면서 단돈 100원을 아끼기 위해 극성을 부리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우리들의 어머니와 닮았다.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열 번 넘게 울었다. 구멍이 뚫린 곳이라면 그 틈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남자에게도 엄마는 친정엄마다.


▶눈물은 후회다. 뭐든지 후회하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온 몸이 우는데, 자식 때문에 수없이 울었을 어머니 때문에 운다. 소리내어 운다. 남몰래 울기에는 어머니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기에 소리 내어 운다. '천금같은 내 새끼'로 살아 온 뻔뻔함 때문에 운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외롭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콩나물 값을 깎는 엄마를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배앓이를 할 때마다 어머니 손길을 기억하는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도 가벼이 여기며 살았다. 지난해 5월 암으로 세상을 뜬 고(故) 장영희 교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보다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Posted by 나재필
사진=KBS캡처

▶이상산(1909~34)은 아비 손에 이끌려 열여덟 나이에 홍등가(紅燈街) 기생이 됐다. 이후 자신을 차버리고 떠난 애인을 행여 볼까 상하이로 간 상산은 되레 독일 남성과 사귄다. ‘될 대로 되라. 내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독일인 처(妻)로부터 모욕을 겪은 뒤 영국인과 다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둘은 빗나간 질투심에 사로잡혀 권총자살로 끝을 맺는다. 1926년 8월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은 일본 유학생 문인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投身)한다. 둘은 정사(情死)할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고뇌 때문에 저승길에 동행했다. 윤심덕은 평소 '세상 남자들은 모두 악마 같다. 나는 언젠가 한 놈은 죽이고 죽는다'고 말하곤 했다. 여자들의 사랑은 때론 치명적이다. 오로지 한쪽 방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천재시인 이상은 금홍과 헤어진 뒤 일종의 도피처로 신여성 지식인 변동림을 선택했다. 소설 ‘실화(失花)’에서 이상은 변동림이 사귄 남자의 수(數)를 캐묻는다. “몇 번?” “한번” “정말?”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아뇨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번 속았다.” 이상은 아내가 간음했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조관념에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둘은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셋방에서 신접살이를 시작했다. 변동림은 이상의 폐결핵 약값을 벌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술집에 나갔다. 그러나 결혼생활 불과 넉 달만에 둘은 갈라섰다. 사별(死別)이었다. 변동림은 얼마 뒤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다. 그토록 정조를 원하던 이상의 사랑은 끝내 ‘관능’으로 무너졌다.

▶여자들이 화장(化粧)을 하는 것은 수준 높은 지적활동이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꾸밈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거울은 나를 비추지만 결국 타인을 향한 시선이다. 사랑이 거울에 비쳐지면 여자들은 꽃으로 피어난다. 그 꽃은 남자의 사랑에 의해 만개한다. 꽃을 꺾는 것은 아름다움을 꺾는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부부 중 12만 4000쌍이 남남으로 갈라섰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구(詩句)는 사랑의 시선을 얘기한다. 마음은 있으나 눈이 멀었고, 눈은 있지만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거다. 상처와 고통을 이겨낸 여자의 DNA를 아는 남자라면 지금 당장 그녀를 사랑하라.

Posted by 나재필
▶베트남은 모계사회다. 기나긴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여자들이 일을 도맡아하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 농촌의 남자들은 게으른 편이라 거의 놀고먹는다. 농사의 시조, 신농씨께서 온화한 날씨를 주어 1년에 3모작을 한다. 사시사철 논을 놀리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의 강도도 세다. 넌라(non·베트남 삿갓모자)는 여자의 경우 16바퀴의 테가 둘러져 있다. 이는 여자나이 16세면 결혼해도 된다는 의미다. 이 넌라의 용도는 더위와 비를 피하는 데 사용하지만, 특히 일을 하는 여자들이 논밭에서 용변을 볼 때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농사일에 전념해야 하는 ‘슬픈 앞가림’이다. 이처럼 노동현장에 내던져진 여자들은 평균 몸무게가 45㎏으로 빼빼하다. 노는 남자와 열심히 일하는 여자. 이 묘한 공존이 베트남을 울리고 있다.


▶식모(食母)는 남의 집에 고용돼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해주는 여자를 말한다. 식모는 급격한 이농(離農)사태가 낳은 여성 잉여 노동력을 도시가 저비용으로 흡수한 경우다. 웬만큼 먹고살만한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시집갈 때 장롱을 사주는 조건으로 그녀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식모는 주인에게 도벽을 의심받고, 술주정에 시달려야 했으며, 주인집 자식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가난했기에 찬밥때기를 먹어야 했던 중산층의 눈물인 셈이다. 식모자리마저 없으면 방직공장·전자공장의 '여공'이 됐다. 얼마 전 끝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70년대식 식모다. 하지만 이제 능력 있는 주부들은 더 이상 밥을 하지 않는다. ‘밥’보다는 ‘밥벌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와 웃음을 팔지 않고 백년낭군과 해로함이 소원일세. 차라리 실오라기 같은 삶을 스스로 끊어서 근심을 잊으리로다.' 나이 일곱에 기생이 된 산골 출신 강명화는 '오입쟁이 놀음판 최고 명기(名妓)'라 불렸다. 그러나 그의 단심(丹心)은 오직 장병천에게 있었다. 장병천은 백만장자 아버지와 훗날 총리까지 지낸 삼촌(장택상)을 둔 명문의 자식이다. 평양·서울 화류계를 석권한 그녀는 병천의 한없는 구애에 무너졌다. 그녀는 병천과 함께 도쿄로 도피해 단지(斷指)까지 결행하며 사랑을 바치지만, 지체 높은 장 씨 집안의 반대로 끝내 죽음을 택한다. 명화는 병천과의 마지막 여행지 온양온천에서 쥐약을 먹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다. 물론 병천도 독약을 먹고 임을 따라 박행(薄幸)한 생을 마친다. 치명적인 사랑이었다.


▶천안함이 물속에서 어둠의 나날을 보낼 때 '여자'들은 눈물로 지샜다. 그 눈물은 강물이 되어, 공포에 휩싸인 바다를 울렸다. 아내로 살아온, 엄마로 살아온, 여자로 살아온 나날들이 그토록 슬픈 적은 없었다. 오매불망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자는 이미 ‘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기꺼이 버린 '남자'에 대한 한(恨)이자 그리움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가 아니다. 고목(남자)은 바람에 쉽게 부러지지만 갈대(여자)는 흔들흔들 거리면서 꺾이지 않는 법이다. 변절자는 남성일 수도 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마음은 머무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속으로 울고 있다. 봄꽃을 즐길 여력도, 춘심(春心)도 없다. 여자는 한 송이의 '꽃'으로 태어났지만 그 꽃에 '향기'를 머물게 하는 것은 남자의 의무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에게 유죄다. 여자를 위무하라.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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