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22 고물과 보물, 9000원이 아까웠던 이유
  2. 2011.09.19 놀부 되는 여자, 주부 되는 남자


▶우리 집엔 자전거가 네 대 있다. 비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더니 이제는 '삭신'에 녹이 슬어 고물이 됐다. 한때 20㎞의 속도로 두 발의 안위를 살펴준 고마운 이동수단이었는데 퇴물이 된 것이다. 거치대가 없는 아파트에 네 대를 놓자니 관리도 어렵고 탈일도 없어 처분키로 했다. 자전거포에서는 거저 주면 모를까 값을 쳐줄 수는 없단다. 어쩔 수 없이 고물상을 찾아갔는데 그 흥정이 고깝다. 자전거 상태도 묻지 않고 대당 3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쓸 만한 한 대를 빼고 세 대를 팔 심산이었으니 (3000원 x 3=9000원) 자전거 세대 값이 고작 9000원이었다. 에계계~. 엿하고 바꿔먹어도 그 정도 값어치는 넘을 듯싶었다. 결국 흥정을 깼다. 며칠 후 3개월간 구독했던 신문지(파지)를 들고 고물상에 갔다. 근수(斤數)를 재더니 9000원을 주었다. 자전거 세대 값과 신문 3개월 치가 똑같았다. 오 마이 갓~.


▶고물상에 동행했던 아내가 고물 판값으로 수제비를 먹자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자전거 세대 값으로, 신문 파지 3개월 치 돈으로 수제비를 먹을 수는 없었다. 대신 집에서 520원짜리 안성탕면을 끓여주었다. 속으론 무척 미안했다. 아니 미안했다기보다는 쪽팔렸고 아렸다. 하지만 어쩌리. 고물을 팔아 얻은 9000원이 그렇게 커 보이는 걸. 예전 학창시절에도 공병(빈병)을 팔아 푼돈을 마련한 적이 있다. 수십 개의 공병을 모아봤자 2000원 안팎이었지만 그 '고물'은 한 끼의 라면도 되고, 열 구간의 차비도 됐다. 이처럼 '고물'은 낡거나 헌 물건을 말하지만 때론 '보물'도 된다. 고철이나 극젱이, 고장 난 밥솥, 유행 지난 헌 옷, 구식 라디오…. 물건 값도 천차만별이어서 단돈 몇 백 원짜리부터 몇 십만 원짜리까지 있다. 값의 흥정은 따로 있지 않다. 눈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낡은 저울과 주인의 눈대중이 전부다. 그러니 손에 쥐는 것은 '어림잡아' 몇 푼이다.

▶고물상이라는 이름에는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등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복지의 중층적 모순들이 오롯하게 투영돼 있다. 버려진 도시빈민, 버림받은 농촌 실업자가 넝마주이를 시발로 우리나라 재활용산업의 문을 열었다. 고물은 버려지는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절제와 검약의 반듯한 정신이기도 하다. 간식으로 머루랑 다래랑 먹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으로 주식을 삼자면 배가 고파 살수 없다. 부자에게 고물은 퇴박맞은 물건이지만 빈자(貧者)에게는 검박한 보물이다.

▶국감이 진행 중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미료(未了) 안건은 6000건이 넘는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은 1만2312건으로 역대 최다이며 17대 국회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러나 이 중 가결된 안건은 15%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공중에 뜬 상태다. 의원 개개인의 입법 구상을 혼잣말 주절대듯 쏟아놓은 안건이 '고물'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고물은 쓸모없을 때 버려진다. 국회가 본연의 구실을 잊고 365일 딴눈을 판다면 고물과 무엇이 다르리. 단풍의 미덕을 생각해보라. 단풍은 제 몸을 바람에 태워 고적한 즐거움을 안긴다. 내년에 더 나은 빛깔을 보여주기 위해 단풍은 스스로 잎을 떨어뜨려 퇴비가 된다.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자기희생이다. 우리가 고물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배고파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배부르게'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예전엔, 예전엔 말이다. 여자에게서 향기만 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연약해 깃털처럼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순결해 고운 말만 쓰는 줄 알았다. 너무나 고상해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너무나 새침해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았다. 너무나 지순해 자수나 놓으며 은인자중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조신해 남자보기를 돌같이 여기는 줄 알았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안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점·점·점(···생략). 500년간 남자들의 횡포와 사매질에 짓눌려 살던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속속곳의 내숭이 사라졌다. ‘한 남자’의 총애만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의 뒤꼍에서 걸근거리지도 않는다.

▶"이천만 동포형제가 신식을 좇아 행할 사이,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침실만 지키고 있는가." 113년 전 서울 북촌의 양반부인 300명이 작성한 선언서다. 이 통문(通文)은 '남자는 눌렀고 여자는 눌렸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프랑스 극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1791년 '여성 권리선언'과 공포정치에 대항하는 평론을 냈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효종의 딸 숙정공주는 스물셋에 요절했는데 3년 연하의 남편이 '재혼을 허가해 달라'며 상소를 올렸다. 왕은 '오케이'했는데 신하들이 펄펄 뛰어 홀아비로 살다 죽었다. 숙종 때 가정주부 신태영은 남편에게 소박맞고는 예조(禮曹)에 이혼을 청구했다. 하지만 9년 소송의 결과는 귀양살이였다. 역사는 여자들에 대해 너그럽지 않았다.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만큼 콧대도 높아졌다. '하이(high)힐'의 높이만큼 자존감도 '하이(high)'다. 그러다보니 무서워졌다. 수줍음이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변기를 깨뜨렸다고 허세를 부리는 '복분자남'들이 밉상이더니 요즘엔 여자가 사회 관념에 구멍을 내고 있다. 여자가 '무서워진 것'은 남자가 '우스워진 것'이다. 손 한번 잡아도 한없이 가슴 떨리던, 미쁜 말 한마디에 까만 밤 하얗게 지새던 '고전(古典)의 여성성'이 사라졌다. 외양(外樣)은 장미 같되, 내면이 호박 같다면 그 여자는 '호박'이다. 외양은 똑똑해졌으나 내면은 툭툭해진 것이니…. 화장으로 흠은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의 결핍마저 감출 수는 없다.

▶푸른 멍처럼 파리한 새벽이 시나브로 남자를 깨우고 있다. 남자가 앞치마를 두른다.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주전자에 보리차를 넣고 물을 끓인다. 이내 설거지 품새로 돌아선다. '퐁퐁'의 양이 중요하다. 너무 적으면 뽀드득 소리가 안 나고 너무 많으면 헹구는데 오래 걸린다. 설거지는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세탁이 끝나려면 2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자투리는 빨래를 개는 시간이다. 세탁 종료 알람이 울리면 베란다 바지랑대에 세탁물을 널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탁탁 털어서 널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빨래가 건조됐을 때 주름살 펴기가 곤혹스럽다. 집안청소는 아침일과의 대미다. 이렇듯 여자가 '놀부'가 되어가는 사이 남자들은 ‘주부’가 되어가고 있다. 추석 명절은 잘 쉬셨는가? 남자들이 행여 허드렛일을 돕지 않고 배짱을 부리던가? 아니면 팔짱을 끼고 있던가? 고까워도 행짜는 부리지 마라. 요즘 남자들, 안팎으로 불쌍해지고 있잖은가.


Posted by 나재필